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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많은워킹맘 Apr 08. 2018

거절에도 '용기 근육'이 필요하다

'NO'라고 말 못 하던 지난날... 거절에도 '용기 근육'이 필요하다

며칠 전, 마무리 짓지 못한 업무를 조금만 더 끝내면 마무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20분 정도 늦게 퇴근할 채비를 나섰다. 근무 시간 동안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던 모니터 화면이 꺼진 다음 사무실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의 주인공은 해외 영업 부서의 부장님이었다. 


"김 대리, 지금 세금계산서 발급이 가능할까요?"

난 이미 컴퓨터 전원을 종료한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이대로 나서면 바로 퇴근인 상태였다. 지금 퇴근해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두 아들이 있는 집으로 가야 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엄밀히 따져보면, 퇴근 시간 후에 발급하는 세금계산서가 의미가 있을까? 급한 건이었다면 오늘 업무 시간에 벌써 완료해야 하는 게 맞다. 바꿔 말해서 내일 오전에 발급해도 별 탈이 없는 업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종을 치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네. 지금 가능합니다"라는 말과 동시에 왼손으로 컴퓨터 전원을 다시 켜고 있었다. 


잠들었던 컴퓨터가 다시 깨어나는 사이, 조금 전의 내 행동을 후회했다.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바보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행동했다며 자책했다. 사실, 나는 정중하게 부장님께 말했어야 했다. 


"부장님, 급하신 건이 아니라면 내일 발급해도 될까요? 제가 지금 막 컴퓨터 전원을 껐습니다."


부장님에게 적어도 현재 내 상태를 이야기했어야 했다. 오늘 내가 계획한 업무를 끝냈고 난 퇴근하면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의사 표현이라도 해야 했다. 내 마음은 벌써 우리 집 현관 앞으로 쪼르르 나를 향해 달려올 두 아들의 얼굴 앞에 있는데도 결국 퇴근 후 타 부서의 업무 요청으로 예상한 시각보다 늦게 퇴근했다. 늘 거절하지 못해 끌려가다가 심리적으로 많은 감정 소모를 하고 나면 후회와 자책하는 일상이 다반사였다.






최근 가족과 세부 여행을 다녀온 이후, 점심시간에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한 뒤 한 시간 동안 영어 공부를 한다. 평소 삼각 김밥이나 간단한 과일을 챙겨서 점심을 해결하는데, 그날은, 남편이 비빔밥 삼각김밥을 만들어서 챙겨줬다. 

그런데 과장님이 혼자 있었다. 나는 오전 중으로 급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외근을 가야 하는 상황이라 점심을 빨리 해결해야 했다. 평소처럼 혼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혼자 남은 과장님과 식사를 함께 해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의무감에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어쩔 수 없이 과장님과 식사를 했다. 그것도 내 차로 움직여서 점심을 먹으러 왔다 갔다 했고, 다급한 내 마음과 달리 과장님의 식사 속도가 느긋했다. 

퇴근 후 남편이 챙겨준 삼각김밥은 나물로 된 비빔밥이라 금세 상했다. 결국은 맛도 보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날 아침, 애써 바쁜 시간에 나를 생각해 점심을 챙겨준 남편은 내심 서운해하는 눈치였다.


"거절은 정말 중요한 기술이다. 정중히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 또한 터득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거절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일단 해보라. 생각만큼 큰일이 벌어지진 않을 것이다. 거절은 삶에서 꼭 필요한 능력이다. 거절하는 만큼 중요한 일에 더 신경을 쓰고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집중과 효율은 물론, 행복의 근원이 거절에 있음을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 강성태의 <미쳐야 공부다> 중에서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발견한 구절이다. 내게 귀한 울림을 주는 문장을 발견한 순간, 새벽에 쓰는 감사 일기에 '나는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거절해도 괜찮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일일 미션처럼 '거절하기'를 수행하려고 노력했다.


그날 이후, 과장님께 점심은 따로 해결하겠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나는 평소처럼 영어 공부를 하고 혼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덕분에 챙겨 온 점심을 먹고 내가 하고 싶은 영어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훨씬 가볍고 산뜻했다. 그리고 예상과 달리,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과장님은 내가 없다고 점심을 거르지도 않았으며, 꼭 나와 점심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과장님 역시 다른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해결했다. 



신체적인 운동을 할 때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갑작스럽게 쓰면 근육통으로 불편함을 겪곤 한다. 하지만 꾸준히 하면 근육통이 점점 사라지면서 체지방은 빠지고 근육으로 단련된다. 

거절할 수 있는 용기도 처음부터 생기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남의 부탁 앞에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나 자신은 뒤에 내팽개쳐 뒀다가, 뒤늦게 불쌍하게 던져진 나 자신에게 미안해서 자책하고 후회했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거절할 수 있는 용기 근육을 기르는 요즘 동시에 자존감도 높아지고 있음을 경험하는 중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 자신을 뒤로 내팽개쳐두기보다 남 앞에 나를 당당히 세워 놓자. 
그것이 나를 사랑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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