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주위 시세보다 턱없이 저렴한 원룸을 구한 아들에게 '왜 이렇게 월세가 싼 거야?' 하고 묻는 엄마에게 한 말이라고 했다.
"여기서 치고박고 찌르고 한 살인사건이 난 건 지도, 목을 매달거나 자살이 일어난지도 모르지요. 우린 이런 환경에 내던져진 지 오래인데요. 왜 이렇게 된 건지 몰라서 물어요? 아버지와 어머니, 아니 수많은 내 앞의 세대가 나쁜 일을 눈 감아주고 함께 도모하고 방관하고 야합하여 개혁하지 못한 때문이지요 뭐. 이제 그런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는 건데요. 왜 그걸 우리가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안치우면 내 새끼 세대가 해야 하고. 그러니까 이건 뭐 폭탄 돌리기가 되었지요.”
그 아들은 게임을 하면서 모니터를 향해 소리질렀는데 그 엄마는 차마 제 어미의 얼굴을 보고 소리칠 수 없으니까 대신 모니터를 향해 소리를 지르지 않았겠느냐 하며 정말 괴로웠다고, 오랫동안 괴로웠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다 죽는 거야. 단지 순서만 있겠지.”
그 아들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라고 했다.
"싸우지 않았으니까, 기성세대들이 싸우지 않았으니까 세상은 이따위고 , 이 꼴이지요. 그러니까 내가 이제 싸워야 하지 않겠어요? 만약 나 또한 겁이 나거나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면 내가 낳은 아이가 대물림하겠지요. 그러니까 그때 좀 나섰으면 좋잖아요? 그때 좀 무섭더라도 더 격렬하게 좀 싸워보지 그랬어요? 이게 뭐야. 부모라는 것이 기성세대라는 것이 형편없이 겁쟁이에다가 이기적이잖아요. 세상을 조금도 바꾸지도 못하면서 대대손손 자식은 왜 낳아요? 그러면서 우리 청년들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살지 못하느냐고 훈계하는 겁니까?"
나의 아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였다. 한 번도 싸우지 못하고 저항하지 못하고 최루탄을 피해 달아났던 나와 남편은 얼굴을 찌푸리며 듣고만 있었다. 민주화든 평화든 그것이 구축되는데 조력 한 번 하지 않고, 조력은커녕 '저렇게 싸워도 세상 안 바뀐다. 헛수고야.' 하며 비아냥거리지 않았던가. 일제 강점기 때 친일하지 않으면 어찌 살 수 있었을까. 생존을 위해선 이념도 신념도 의리도 정의도 없어. 그리고 강자에게 빌어 붙어먹는 것은 진리야. 그땐 일본이었고 지금은 미국이지.' 하며 비겁한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않았던가.
한 명의 이순신, 유관순, 안중근, 홍범도, 윤동주, 리영희, 전태일, 노무현이 엄연히 존재했었다. 그렇다면 모두들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고 비겁한 자기변명과 자기 연민일 뿐이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성공과 안위를 위해서 시작했다면 결국 자기 위로, 이불속에서만 해야 할 자기 위로를 순박한 독자들에게 마구 해대고 있는 꼴이지 않는가.
결국 폭탄은 이 아들들에게 딸들에게 돌아왔고 그들의 품 안에서 터지게될까. 아, 난 얼마나 자라나는 아이들을, 청동의 푸른 젊은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응원한다고 세 치 혀로 거짓 위로와 희망고문을 했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나는 이 책을 정말 오랫동안 경멸했다. 변태의 지식인은 너무나 많고 지금도 세상 곳곳에 포진해 있다. 폭탄은 이 허약하고 비겁하고 입바른 지식인들에게서 기어코 터져야 한다. 아, 너무 많이, 너무 오랫동안 폭탄 돌리기 게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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