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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b급 잡설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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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Sep 30. 2023

스타벅스에서 달콤한 명절을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아니라 '스타벅스에서 명절'을 보낸다.      

 

동네 스타벅스는 두 곳. 하나는 8시에 문을 열고 나머지 하나인 드라이브 스루는 7시에 문을 연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7시에 정확히 그곳에 갔고 몇 번은 일찍 도착하여 입구와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다가 들어갔다.  이젠 아는 직원이 생겨서 따뜻한 물까지 건넬 정도이고 그렇게 부산한 아침에 그것을 챙겨주는 것이 고마워 감격하기까지 하였다. 동네 카페를 선호하는 나이기에 , 무엇보다 문어발식 확장을 하는 여타 대기업처럼 스타벅스도 그중 하나로 처우가 그렇게 남다를 것이 없다는 점에서 하필이면 여기냐고, 하는 자책감만 누르면 그야말로 낙원인 셈이다.


추석날 아침 평상시와 똑같이 노트북을 들고 이곳으로 왔다. 명절날 아침에 집을 떠나다니, 떠날 수 있다니, 나는 벅차고 황홀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런 행운을 내가 거머쥐다니. 


오래전, 그러니까 삼십 년도 더 된 추석 다음날이 생각났다. 나는 두 시간에 한 번꼴로 들어오는 시외버스를 타지 않고 택시를 잡아 다섯 살 아들의 손을 잡고 시댁을 빠져나왔다. 택시 기사가 불안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마치 가정 폭력을 피해 달아난 여자쯤으로 봤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폭력이었다.  죽은 자를 기리면 집안의 안위가 보장될 것이라는 가부장의 미신같은 신념에 의해 집단 가스라이팅된 수많은, 죽은 자보다 더 많은 여자, 며느리의 희생이 제물로 올라가 있는 야만의 행위. 


그 많은 제수를 장만하고 추석을 지내고 친정에 가려는 나를 시댁 식구들은 붙잡았다. 네 명의 시누이들이 오기 전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이었고 그 옆에서 남편이 그것을 거들었다.


 택시에서 내려 우리 모자는 다행히 문을 열고 있는 한 카페에 들어가서 팥빙수를 시켜 먹었다. 해방감이 들었다. 그것은 며느리는 그저 돌봄과 희생의 제물이라는 집단 무의식에서의 탈출이었고 제사에 목숨을 거는 남편에게서의 탈출이었다.  그때 먹었던 팥빙수의 맛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제사에 결정권을 쥐었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과 제수, 명절날 음식을 결정하고 축소했다. 그것을 차마 볼 수 없던 시누이들은 부모님 제사 음식은 따로 만들어 오기도 했다. 한 십 년가량은 시아버지, 시어머니 따로, 나중엔 같이 제사를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해 대추를 빼먹은 나를 힐난하는 남편을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제사를 그만 지내겠다고 공표했다.  완강하게 저항하는 나에게 남편은 이제 제사에 동참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혼자 하겠다고 하였다. 이제 그 여자가 침대용에서 제사용으로 바뀌는구나, 하고 말하는 나에게  남편은 어떤 변명도 하지 못했다.


나는 남편의 여자가 , 그것도 가정이 있다는 그 여자가 남편의 제사용까지는 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남편은 어느 귀하고 순한 사람도 거칠고 황폐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유형이어서  난 남편이 여자가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흘렸을 때도 무심하였다.  그들이 비즈니스적으로 얽혀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화가인 그 여자가 얻을 것이 없다면 남편 옆에 오래 남아있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았다. 실지로 나는 그 여자의 그림과 남편의 그림이 나란히 관공서, 그것도 법원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들의 비즈니스를 가장한 불륜, 불륜을 가장한 비즈니스는 그 여자의 아들인가, 딸이 결혼식을 하면서 깨졌고 그 여자는 나의 이종사촌의 입을 통해 - 그 여자는 공교롭게도 내 이종사촌의 친구였다-  자꾸 이렇게 나를 물고 늘어지면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릴 거야. 하는 망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남편과의 별거로 인해 이제 나는 더 이상 제사니 경조사에 좌우되지 않는다. 며칠 전 남편은 친구의 딸 결혼식에 오지 않을 거냐고 톡을 보내왔고 나는 그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남편은 나를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시부모의 긴 간병 기간은 간병사로, 그 수많은 제사와 명절은 제례용으로 경조사용으로 써먹더니 별거 후에도 그 악질적인 버릇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과의 일이 떠오르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손을 가슴에 얹고 쓸거나 호흡을 가다듬는 습관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이 습관도 오늘로써 마감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 명절날 아침, 명분도 의미도 없는 제사를 지내주느라 부역하였던 나의 지난 노고에 위로를 할 수 있는 공간에 와 있으며 무엇보다 무수히 많은 여자들이 명절날 아침을 카페에서 보내기를 바라는 도발의 여유가 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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