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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b급 잡설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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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Oct 19. 2023

인맥 보다 치맥

유명한 소설가의 강연이었다. 대구, 경상도에서 받은 환대를 잊지 못한다는 것으로 말의 포문을 연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고 왔다고 말하며 한 시간 내내 사석에서나 할 이야기, 그러니까 원고료 이야기만 계속하다가 강연을 마쳤다. 질문에 대한 답변도 두리뭉실하였다.


강연을 마치고 몇몇 아는 사람끼리 술집에 갔다. 누군가가 말했다. '내 친구는 말입니다. 이주일마다 만났던 내 친구는 암으로 죽었어요. 겨우 위암 2기인데 말이지요. 아산병원에 갔던 게 문제였어요. 서울대 병원에 갔어야 하는데.' 하고 그는 그 말을 만나는 사람마다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 죽은 친구의 여동생이 테이블에 합석하였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했던 말과 똑같이 그 여자가 말했다. 우리 오빠가 위암으로 죽었어요. 겨우 위암 2기인데 말이에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또 끄덕이고 술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당신은 일본풍이라고, 일본여자 같다고 오빠가 죽었다고 말했던 여자는 맞은편의 여자에게

말했고 그 여자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또 다른 여자는 자신은 맥주를 좋아한다고 말했고 막걸리는 중독이 심해서 겁난다고 말했다. 맞은편 여자는 안주로 나온 것을 연신 먹다가 남은 것을 모조리 가방에 넣었다.

 

다른 또 한 남자가 자신은 노무현대통령을 정말 좋아한다고 했고 그 옆에 옆에 있던 여자가 자신도 그러하다고 정치색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노무현 신봉자인 그는 자신을 제외한 소설가 모임이 결성되었다는 말에 '참 웃기네요. 모임을 없앤 장본인이 다시 다른 모임을 결성하다니.' 하였고 자신을 배제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좌중의 한 원로 소설가는 이 나라의 작가 중 한 편만 쓰고 그것을 평생 우려먹는 작가가 있다고 했는데 결국 두 작가의 실명을 토로했다.  이 날 있었던 말들 중 가장 사소하지 않은 것이었다.  


또다시 몇몇은 커피숍에 갔고 요즘 젊은 세대들의 출산율을 걱정하였고 그런 이기적인 세대와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세대 간 불화를 이야기하다가 왜 이렇게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반려가 각별한 시대, 그러니까 위로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 때 우리 중 누군가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하여 유명한 맛집으로 갔고 그리고도 아쉬웠던지 카페로 가서 빙설을 먹었다.


빙설을 먹은 뒤 이번엔 내가 맥주를 마시자고 청했고 힘들게 겨우 찾아간 맥주집에 앉아 정치 이야기를 했다. 남자는 선후배 간의 인맥을 이야기하였고 인맥을 이용한 사람과 이용하지 않은 사람의 현저한 차이를 말했다. 나는 인맥 보다 치맥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했고 일제히 와르르 웃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또다시  '소설가는 끝났다. AI 가 비례국회의원이 되어야 하고 소설가는 AI를 이길 수 없다.'라고 한 남자가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AI도 인맥 보다 치맥이라고 생각할 줄 알까. 인맥이라는, 사람 간의 관계가 얼마나 지난하고 비루하고 슬픈지, 그래서 인맥보다 그저 치맥이 낫다 하고 판단을 내린 사람들의 느낌적인 느낌을 알까.


모두들 비슷한 상실감일까,  힘없는 표정으로 헤어졌다. 우리들은 서로의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아니 뒤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서로가 완벽하게 닮음꼴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서로를 오래 보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안 것이리라.  나도 허겁지겁 지하철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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