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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b급 잡설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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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Oct 17. 2023

제주도의  그

이제 없는 사람을 기억하며

사진 속의 그만 남았다. 말도 목소리의 기억도 흔적없이 사라졌다. 다만 그의 긴 머리카락과  염색물들인 옷과 그리고 바다 앞에서 사진을 찍던 모습을, 찍은 사진만 남았다. 후배는 그를 취재하러 제주도에 가는데 함께 가자고 했고 나는 다섯 살 된 아들에게 제주도를 보여주고 싶어 동행하였다. 그의 차가 공항에 픽업하러 왔는데 옷차림이며 날카로운 눈빛과 건조한 눈빛에 나는 그를 줄곧 외면하였다. 


어느 바닷가, 낙조가 올 무렵이었던가, 그가 현무암 해변으로 내려갔고 수동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려놓고 불편한 자세로 앉았다. 아들은 후배의 자동카메라, 태어나서 처음 만지는 카메라로 나와 후배를 찍었고 그리고 무슨 일인지 그 어린 아들은 그를 단독으로 찍은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한치회와 전복죽집을 알려주며 그곳으로 함께 가는 중이었다. 

그가 능숙하게 제주도의 깊은 밤길을 운전하였는데 , 길모퉁이에서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런 곳에 한가족이 서 있지요? 버스 시간도 지났을 텐데.'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 가족을 봤군요. 아, 보는 사람이 있군요.'

버스승강장 입간판 아래에 열 명가까이 되는 일가족이 서 있었다. 어둠 속에 그들은 손전등에 비친 형상으로 또렷하긴 하나 버스를 기다린다는 것보다는 사진을 찍히기 위해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얼굴은 떠오르지 않고 물론 표정 또한 선명하지 않았지만 내가 본 것은 환상이 아니었다. 

'그럼 귀신이라는 말이에요?'

후배가 소리 질렀다. 다행히 아들은 잠들어 있었다. 


비에 미끄러진 버스가 길을 걷는 일가족 전체를 덮쳤고 비명횡사한 그들은 밤에 가끔 나타나 택시기사나 운전기사를 혼비백산하게 만든다고 그가 말했다. 어쩌면 그 이전에 있었던 역사적인 학살로 나타나는지도 , 죽은 지도 모르는 일가족이 궂은 날씨에 나타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4.3 사건이든 해서 한이 많은 섬이고 그래서 귀신이 자주 나타나 억울함을 나타낸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말을 신뢰하기 시작했고 그의 차가운 태도, 무심한 표정을 그제야 이해할수 있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들 일가족이 교통사고이든 4.3 사건 희생자이든 나는 억울한 이들을 목격하였고 제주도라는 아름다운 풍광 뒤의 처참했던 시대적인 아픔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그래서 제주도에 있습니다. 처연한 슬픔이 도사리고 있는 제주도의 풍광을 기록하기 위해 여기서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의 말이 아직도 귓전에 울린다. 그의 단독 사진과 나와 후배의 사진 뒤로 보이는 그의 웅크린 모습, 바다를 응시하고 있던 또 하나의 섬인 그. 그는 사진예술가 김영갑이다. 이번 제주도 올레길에선 그의 자취를 찾아 두모악의 김영갑갤러리를 꼭 찾을 것이다. 그에게 당신의 사진이 얼마나 제주도의 억울하고 슬픈 사람들을 위로한 것인지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죽어서도 제주도를 떠나지 못할 그의 자유롭고 정의로운 영혼에 깊은 애도를 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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