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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b급 잡설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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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Oct 17. 2023

살고 싶다는 것

   더 늙으면 기필코 자식의 집으로 들어가서 살겠다는 남자, 고작 60대인 그의 얼굴은 지나치게 건강하게 보인다.  자식에게 투자했으니 이제는 돌려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면서 침을 튀기며 효도의 의무에 대해 말하는 그의 얼굴을 나는 끝내 외면하고 말았다. 

아마 저 남자는 쉽게 죽지 않기 위해 온갖 애를 쓸 것이다. 남의 살을 , 남의 피를 먹고 , 그러다 더 살려고 타인의 수명까지도 욕심을 낼지도 모르고 죽지 않으려고 겨우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말 것이다. 

   이런 기이한 상상을 하며 나 자신을 본다. 살고 있으니 살고 싶다느니, 살고 싶지 않다느니 하는 것도 관념이고 말뿐일 뿐. 죽음이 베개처럼 가까이 느껴진다는 것만이 말이 가닿지 못한, 가닿을 수 없는 명징한 감각이라는 것.


   집을 나가며 방을 정리하고 현관의 남겨진 나의 신발을 가지런히 두는 습관이 붙은 것이 꽤 되었다. 언젠가 한 동화작가가 단박에 죽는 모임이라는 밴드를 만들었지만 그 이름이 흉측하다고 하여 다른 이름으로 명명했다는 말을 들었다.  여전히 죽음은 이렇듯 초연할 수 없는 ,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있다. 


   팔순이 넘은 나의 어머니가 말했다. 먹어야 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불행이야. 넌 보릿고개를 겪지 못해 이걸 모르는 거야.  살고 싶은 마음이 들면 먹고 싶은 마음도 든단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항감이 일어났다. 품위 있게 , 죽음이여 어서 와라, 나를 덮쳐라 이렇게 패기 있게 죽음을 맞는 태세전환을 할 순 없는가. 품위있게 살고 싶듯이 품위있게 죽고 싶은 것이 왜 불길하고 불온한 욕망이란 말인가. 죽음 앞에서 도도한 태도를 선지자들에게서 보고 싶다. 


   물론 죽음을 품위 있게 해치운 사람을 알고 있다. 사전연명의료라는 제도가 생기기 훨씬 전에 스스로 곡기를 끊은 이도 있고 생전에 장례식을 미리 하고 죽음은 혼자 조용하게 가장 가까운 한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간 이도 있다.   


   나도 그럴까. 자식의 집으로 들어가진 않겠지만 수명을 늘리고자 안달이 날까. 그래서 훈련하고 연습한다. 오만하게도 나는 조선의용군 최후 분대장이었던 김학철선생님의 죽음을 표본으로 삼는다. 터무니없는 자만이다. 

   그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그대로 옮겨본다. 


김학철(독립운동가 85세) 21일 동안 물만 먹다 마지막에 관장을 하고 돌아가시다.


"내 일생을 통해 가장 경계해 온 것이 남에게 쓸데없이 폐를 끼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번거로움이니 며느리 너는 , 나 죽은 날에도 울지 말고 그냥 학교에 가라 가서 평상시처럼 아이들을 가르쳐라."


" 늙은 혁명가의 죽음 은빛호각"-더는 목숨에 연연하지 않겠다면 일체의 병원치료와 주사를 거부하고 꼬박 21일을 굶은 뒤 소년처럼 머리는 면도로 깨끗이 밀고 간호사를 불러 관장하고 중산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남들이 다 잠자는 새벽 2시 반에 조용히 식구들을 깨워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평소의 모습처럼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하시다가 그만 깜빡 저 세상으로 가시었다.


(죽음의 느낌을 알아 식구를 깨워 병원으로 간 것은 집에서 죽으면 경찰이 오고 의사도 오고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이었을 것 같다.)      


[출처] 7월 14일 유튜브정리(인생철학-병원의사에게 속지 않고 슬기롭게 죽는 법)|작성자 나무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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