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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b급 잡설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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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Oct 09. 2023

소설을 출산하다

생애 첫 소설집

소설집이 나왔다. 거실 한편에 책들이 쌓여있다. 빨래를 널거나 걷기 위해 나갈 때마다 그것을 바라본다.

도대체 나는 무슨 짓을 저질렀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나를 원망하듯 눈을 흘기고 문장들은 창이 되어 나를 찌르며 의미와 주제는 망치로 심장을 내려 찧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것들을 피해 서둘러 집을 나왔다. 무작정 걸어서 일몰 전까지 이만 오천 보를 넘게 걸었다. 오늘만큼은 검열하지 말자, 검증하지 말자, 후회하지 말자.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 부채감을 느끼지 말자. 책을 낳은 날이면 기뻐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자신을 세뇌하며 줄곧 걸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감사한 마음을 전할 사람과 책을 부칠 사람과 전해줄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우체국과 모임장소와 카페를 다니며 출산의 소식을 전해야 한다.

펄벅의 장편소설, 대지(大地)에는 왕룽이 아기를 낳은 뒤 부인인 오란에게 '이렇게 예쁜 아기는 어디 없을 거야.' 하고 했다가 아차, 하면서 하늘에 대고 '이렇게 못생긴 아기를 좀 보라니까요? 얼굴도 얽었고 이게 뭐야.' 하며 말을 바꾸는 대목이 있다. 오란이 옆에서 '그렇고 말고요. 정말 못생긴 아기라니까요.' 하고 거든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신당에 가서 향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린다. 아기의 무탈과 장수를 비는 절을 거듭거듭 한다. .


새삼 그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혼란스럽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 작업이라는 노동이 특이한 것을 알고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낳은 창작물조차 기이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치 탄광의 막장 속으로 들어가는 두려움 속에서 '어떻게 내 속에 이렇게도 많은 괴물이초식동물이, 풀들이 서로 싸우고 물어뜯고 잡아먹히고 하고 있었던 거야.' 하면서도 발을 한 발 한 발 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싶지 않는 그 기이한 충동과 신념. 그렇게 해야만 겨우 문장의 한 줄이 완성되는 것, 그제야 희미한 미소를 짓는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이 다름 아닌 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면 몇 분의 수명이, 몇 시간의 수명이, 몇 개월의 수명이, 몇 년의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은 급속한 노화를 경험하게 되는 착각이 일어나며 이러한 과정이 소설의 비정한 운명이라는 것을 슬슬 느끼기 시작할 때는 이미 후진할 수도 없는, 뒷걸음칠 수도 없는 것, 소설 중독에 걸린 것이라는 것을, 오로지 주체적인 선택이자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다시 출산하게 될까. 이 아이는 잊어버리자. 이렇게 자주 중얼거리지만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미 일은 커졌다. 밀실에서의 중얼거림이 광장으로, 마치 확성기를 대고 떠들어대는 꼴이 되었다. 이제 창작에서 소비로 , 소설가에서 독자로 번진 것이다.  한 번 읽고는 다시 읽고 싶지 않아 중고서점에 팔지도 모르고 주위 사람들에게 읽을 필요가 없어, 이 소설은 쓰레기야. 할 수도 있고 도대체 이런 소설을 사고 말았다니, 하며 구매자들은 환불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이것에 대한 고통으로 최악의 경우엔 다시는 소설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 다시 출산하는 일은 없게 된다.


출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 고통은 거듭되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의 숙명, 소설가의 숙명을 알면서도 또 다른 주인공이 날뛰고 오열하고 절망하고 그리고 나서도 또다시 그것을 잊어버리고 사랑하고 마는 것을 어떻게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을까.


그러니 쓴다. 문장이 나를 이끈다. '여기 이렇게 못 생긴 아기를 누가 좋아나 할까?' 하고 울부짖었던 그 붉고도 창백한 왕룽과 오란의 말처럼 나 또한 나의 문장이 장수하기를 무탈하기를 소망한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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