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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b급 잡설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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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Oct 16. 2023

소설가의 책을 환불받는 방법

오래전 읽었던 소설이 생각난다. 한 소설가는 자신의 책을 사서 읽었던 사람이 환불을 요구하는 것에 깊은 고민에 빠진다. 도대체 이런 소설을 돈 받고 판단 말이야? 모든 공산품은 환불이 되는데 이런 불량 소설도 환불받아야 해. 하는 의지로 소설가에게 줄곧 환불을 요구하는 구매자가 있었던 것이다. 소설가는 시끄러운 것을 피해 쉽게 환불해주고 말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게 선례가 되어 자신의 책이 모두 환불의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하였다. 이미 읽었으니 상품의 가치는 훼손되었으니 책을 읽은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 소설가는 구매자에게 이렇게 말했지만 구매자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설가는 상품의 호불호는 개인의 취향과 선택이므로 환불은 절대 불가하다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신념을 굳건히 한다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지금 바로 내가 그런 위기에 있다. 


책이 나오고 오늘이 5일째이다. 지인들에게 카카오톡을 통해 책 표지사진과 책이 나온 소식을 전했다. 소수는 책을 구입하고 인증샷을 찍어서 보냈고 또소수는 구입해서 읽겠다고 했고 그리고 나머지는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그들 침묵의 지인들이 서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에겐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보내주마고. 보내면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소설 속의 소설가처럼 환불을 해줄까 말까 하는 고민과 닮은 꼴이었다. 


책값은 17,900원이며 10% 할인해서 16, 100원하는 곳이 있고 쿠팡에서는 17,000원이다. 이 돈이면 괜찮은 한정식을 먹을 수 있고 게다가 어쩌면 커피와 디저트도 먹을 수 있다. 먹느냐 읽느냐 선택의 기로.


오래전 직장에 같이 일했던 한 동료가 일일이 카톡으로 책 출간 소식을 전하는 나의 촌스러운 마케팅을 , 그러니까 직접 구매해서 한 번 읽어봐 달라는 나의 앵벌이에 가까운 처절한 신호를 감지했을까, 직접 만든 사진을 보내왔다. 이렇게 홍보하면 말이 길 필요가 없다는 조언까지 해주었다. 나는 기막힌 아이디어였지만 마치 본격적인 앵벌이처럼 느껴졌고 너무 없어 보이지 않느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선택의 여유도 폭도 없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이상 책을 내면 바로 팔리는 구조가 아니다. 나처럼 지방 작가, 영향력도 없는 작가는 일일이 아는 지인에게 읍소하며 책을 사달라는 부탁밖에 달리 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런 다수의 작가들의 현실을 알리자면 솔직하다 못해 없어 보이는 이런 마케팅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품위를 지키면서 실속을 차리기는 어렵다. 실속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그것이 품위이지 않을까, 하는 궤변까지 아니 궤변이 아니라 꽤 정당한 변명이 드는 것이다. 


앵벌이가 아니라 당당한 마케팅.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렇게 나는 점점 뻔뻔함과 당당함의 경계를 넘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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