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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b급 잡설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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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Oct 11. 2023

사람을 점령하는 공간

천장은 높고 높고 거기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 조명은 한낮에도 켜져있다. 이처럼 화려하고 거대한 웨딩홀에서 출간기념회를 한다. 테이블은 지나치게 크고 의자의 간격도 넓어 옆자리의 사람과는 손마이크를 해야만 말을 전달할수 있을 정도였다. 옆 사람과 말을 하기 위해서는 귀를 쫑긋 세워야 하고 뭐? 뭐? 몇 번은 거듭해야 겨우 들을 수 있다. 모임에 참석한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은 사람들로서는 청력과 시력을 그야말로 총동원해야 하고 그렇게 해도 공감은 덜 이루어진 듯했다. 


이  거대한 공간은 물 먹는 하마처럼 사람들의 목소리를, 마이크 소리까지 잡아먹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편안한 친교도 빨아먹었다. 


넓고도 넓은 테이블에 연이어 올라오는 일품 음식은 수많은 가짓수에도 휑하니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고 이상하게 와인잔이 자주 쓰러졌다.  게다가  이런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기 위해 적지 않은 음식값(서비스를 포함)을 지불한 손님의 처지로서는 지나치게 무표정하고 불친절한 직원들의 태도에  불편을 넘어 불쾌감까지 느껴야 했다.  


공간이 거대하면 인간은 위축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화려한 외장의 넓고  거대한 건물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키를 부쩍 넘은 천장과 넓은 평수에 그만 왜소함을 느끼고만다. 넓고 깊게 속속들이 잘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 외국의 관공서는 하나같이 우리나라의 마을회관처럼 소박하였다. 그래야 어려움을 신청하거나 지원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접근이 쉽기 때문이며 그래야만 관공서의 공무원들이 마치 시혜나 베푸는 듯 거만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높은 빌딩의 경비원이나 안내원이 얼마나 차갑고 냉랭하고 불친절하게 사람을 가려서 대하는 것을 왕왕 본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이치이다. 


제주도 올레길을 트레킹 하면서 사람들은 왜 그토록 낮고 작고 소박한 집과 사람들과 시골길, 골목길을 찾아다니는지 잘 알게 되었다.  그건 아마도 도시의 거대한 건물들에서 위축된 자존감을 낮은 한없이 낮은 집과 길에서 위로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화려하고 크고 넓은 것을 선호하였을까. 포장이 거창해지면 내용이 그 가치를 잃는다. 무엇보다 그 거대한 공간이 사람의 기운을 빨아들여 다소 수줍어하며  별 것도 없는 수다와 잡담, 따스한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볼 수 있는 여유조차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사상가 슈마허의 말이 계속 떠오르는 한 낮 거대한 한정식 식당에서 나는 값비싼 음식을 위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돈이 아까워서, 그 어마어마한 공간의 힘에 압도당한 것에 반발하고 싶어서, 저항할 에너지를 비축하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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