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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b급 잡설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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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Oct 03. 2023

그녀들의 목소리

고음은 확실히 듣기 거북하다. 중년의 여성은 들어오자마자 탤런트 전원주씨와 유사한 웃음소리를 터트리더니 정확히 2시간 넘게 담화를 나누고 있다.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처럼 큰소리로 말하고 있다. 목소리의 톤이 너무 높아서 말할 때마다 웃을 때마다 귀가 아플 지경이다. 철 지난 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장소와 날짜를 조율하면서 벌써 휴가 장소에 있는 것처럼 왁자지껄하다. 특히 그중 한 명의 목소리가 심하게 거슬린다. 의자 하나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 마치 안방에 있는 것처럼 벽에 등을 벽에 기대고 손뼉까지 치면서 말하는 것도 그렇고 중간중간 이 지랄 저 지랄, 하는 욕설도 그렇다. 

난청일지도 모른다. 귀가 좋지 않으면 목소리가 커진다고 한다니까. 저 목소리 때문에 좋지 않은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나의 목소리는 어떨까. 듣기 싫은 쪽일까. 몇 번 친구가 카페에서 쉿 하고 나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던 때가 있었으니 나 또한 저들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말했던 친구조차 지나친 고음에다가 흥분하면 음계 중 도레미파솔 가운데 솔에 해당하는 목소리로 나를 놀라게 한 적이 있으니 회갑을 맞는 중년의 여성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장애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중년의 여성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년의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몇 달 전인가, 그 친구의 차 앞에 주차한 한 차 때문에 나는 카페 카운터에 가서 차 번호를 말하고 차를 옮겨달라고 부탁했었다. 차주인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도 않았던지 한참 시간이 걸려서야 카운터의 종업원이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말한다. 차주인인 손님이 왜 차를 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차 위치 좀 확인 좀 해주시겠어요?  나는 종업원에게 친구의 차를 가로막고 있는 차주인의 번호판이 나와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종업원이 재차 방송을 하자 한 여자가 '도대체 왜 자꾸 방송을 하는 거야? 난 화단에 차를 주차했는데 말이야.'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카페의 손님들이 일제히 내 쪽을 쳐다보았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나이고 피해자는 그 여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차종을 물었다. 여자는 차종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아니 내 차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무슨 말이야?' 하며 더욱 큰소리로 짜증을 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내 목소리는 화를 참느라 깊은 우물 속의 두레박처럼 낮고 침울하게 들렸다.  


귀하는 왜 화부터 냅니까?

화가 최고조일 때 내가 상대방을 향해 쓰는 호칭이 바로 이 '귀하'이다. 

그러자 여자가 일순 당황한 듯 차키를 가지고 나를 뒤따라 왔다.  '분명히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결국  여자는 자신의 차 뒤에 있는 차 한 대를 보았다.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친구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우린 저렇게 늙지 말자.

눈치 빠른 친구가 말했다.

저 여자 말이야? 

그래. 저 귀하. 

무슨 말이야? 그게.

그런 게 있다. 어쨌든 저렇게 늙지는 말자. 그리고 지금부터 목소리 훈련 좀 하자. 낮고 천천히, 그리고 친절한 목소리로 가꾸어 보자.


갱년기라는 단어를 완경기로 바꾸고 근력을 키운다며 헬스장을 드나들고 피부를 물광이니 환하게 한다고 의료시술에 몸을 맡기고 동안이라는 말이 최고의 접대어가 되어가는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음성, 말투, 침묵임을 알겠다.  부끄럽다. 지금까지 얼마나 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로 민폐를 끼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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