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하나의 인간인지라.
주노의 두살
나의 부모님은 짜증이 많고 부정적 성향이 있으신 분들이었다. 지금이야 부모도 사람이란걸 알게되어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조금 더 어렸을때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라면 내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어야하는 것 아닌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어떻게 화나 짜증을 낼 수 있는거지. 그것이 진정 부모인가. 나는 세상이 가르쳐준 이상적 부모를 기준으로 나의 부모를 판단했다. 나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부모의 책임감과 사랑에 사회가 가르쳐준 이상적 부모의 기준을 더해 나와 동생들을 키우셨다.
한번은 동생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글로 배운것 같아.” 나 뿐만 아니라 동생도 그렇게 느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엄마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가 그리는 좋은 엄마, 밑도 끝도 없는 희생과 돌봄이 당연한 엄마는 아니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휴식처도 아니었다. 내가 느낀 엄마는 희생과 돌봄을 의무처럼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완전히 의무로만 생각하고 한 것은 아닐거라는걸 안다. 하지만 이따금 엄마가 한숨을 쉬고 우울해하고 짜증을 내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말하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존재하는가 생각해보았더랬다. 그리고 내 자신이 부모가 되고서야 부모도 각자의 특정한 성격을 가진 인간이고 부모이기 이전에 자신의 삶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매일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질문, 왜 사는가. 를 꾸역꾸역 누르며 자식들에게 의무를 다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부모로서의 삶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앞으로 나아갔을 내 부모에게, 결과야 어찌되었든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은 주노에게 화내고 한숨쉬고 협상하고 심호흡하고 벌주고 내가 뭘 잘못했나 머리를 쥐어뜯은 날이었다. 날은 더웠고 아이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같은 말을 백번하면서 아이의 짜증에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야했다. 짜증이 치밀고 나중엔 화가 났다. 왜 내 설명을 알아들었으면서도 같은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아이를 잘못키우고 있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이의 사춘기가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십대 특유의 짜증이 무서운게 아니라 내가 한 인간을 태어나게 해놓고 제대로 못 키워 성격 파탄자 만들어낼까봐 무서웠다.
아이를 재우고 돌이켜보니 생각보다 아이가 짜증을 낸 순간은 많지 않았다. 다만 아이의 짜증에 더운 날씨와 내 더러운 성격이 더해져 그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낳았을 뿐.
나는 주노가 내가 나의 엄마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로서 나를 사랑하는건 알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엄마에게 너무 버겁고 힘든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다. 많이 들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내일은 더 많이 안아주어야겠다. 그리고 아무리 거부해도 사랑한다 말해주어야겠다. 오늘의 반성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