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배우는 아이를 보며 드는 생각.
주노의 두살
나는 표현이 인색한 집에서 자랐다. 그나마 무슨 날이나 되어서 어쩌다 쓰는 편지에 고마워요. 사랑해요. 쓰는것도 서로 참 간지러워한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내가 주노에게 사랑해. 라는 말을 할리 만무했다. 내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가 또래 아이들이 부모들과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고 뽀뽀를 하는 것을 보고 번뜩 정신이 들었다. 물론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바깥으로 내뱉으면 또 다른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노력을 시작했다. 온몸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을 참으며 아이에게 사랑해. 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날 주노랑 아무말 없이 꼭 껴안고 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어 아이를 보며 물었다.
“주노는 엄마 사랑해?”
나는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주노는 특유의 수줍은 웃음을 보이더니 괜히 시선을 피하고 “몰라!” 라고 대답했다. 장난스럽게 시작한 질문에 조바심이 더해졌다. 왠지 꼭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몰라? 왜 몰라- 엄마는 주노 사랑하는데? 주노도 엄마 사랑해?”
주노는 계속 몸을 배배 꼬기만했다.
“사랑해? 사랑해?”
나는 장난스럽게 아이에게 포옹을 하며 재촉하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돌아온 아이의 대답은 “사랑해 아니요 !”였다.
“이제 그만 물어봐?”
주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말을 배우는 아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대상과 언어의 관계가 가시적인경우 즉, 사과, 공룡, 알 이런것들이야 그 표현의 개념과 이용을 익히기 쉽겠지만, 어른들도 대답하기 힘든 개념의 언어들은 어떨까. 아이는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아이에게 사랑해. 라는 표현이 언제 어떻게 쓰는 표현이라고 정립되어 있을까. 자꾸 사랑한다는 표현을 재촉하는나를 보고 왜 그렇다고 생각했을까. 최근에 배운 슬퍼. 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누군가 울고 있으면 주노는 그 아이가 슬프다는 말을 한다. 아이에게 ‘슬퍼’라는 표현에는 우는 얼굴 말고 또 어떤 것이 들어있을까.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마음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그날, 내게 사랑해 라고 말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감정을 배우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기뻐, 좋아, 슬퍼, 화가나 라는 말과 함께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신기한 감정들을 배워나가겠지. 좋은 감정이야 무난히 지나가겠지만 나쁜 감정은 겪으면서 힘들고 당황스러울 것이다. 사는거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닌데 그 모든 것을 다치고 넘어지고 구르며 배우는 기간은 더 쉽지 않은 것 같다. 더군다나 그걸 알기에 자꾸 도와주고 싶고 내가 대신해주고 싶은 순간들이 올 것이다. 대신 해결해주는 대신 옆에서 지켜봐주고 선택을 응원하고 필요할때 위로가 되어주는 것. 그리고 아이를 위험에서 보호하는 것.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란 참 쉽지가 않다.
어디선가 양조위가 했다는 말을 읽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 섹시하다고. 많이 공감하면서 한때 ‘내가 제일 섹시해.’라고 외치고 다녔더랬다. 참 귀여웠다 나도. 주노가 많은 시련을 겪었으면 하는 건 아니지만 여러의미로 섹시한 아이로 자라도록 돕고싶다. 다 잘 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