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보는 아이.

by 몽아무르

주노의 두살 그리고 뱃속의 리아


프랑스에서는 임신 기간 동안 세번의 초음파를 한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두번째 초음파를 했다. 주노 때는 처음이라 그저 아이를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초음파를 갔더랬다. 그런데 주노에게 수술이 필요한 작은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때가 두번째 초음파였다. 게다가 작은 문제는 그것 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구순구개열이 다른 장애 증상 하나일 가능성이 있으니 유전자 전문가와 약속을 잡고 정밀 초음파를 하고 양수 검사를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모든 것은 나와 님의 선택이었다. 장애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위험이 있을 수 있는 양수 검사를 것인가. 확인하겠다고 정했을 경우, 장애가 확인이 되면 아이를 지킬 것인가 아닐 것인가. 두번째 초음파는 5개월에 했다. 이미 뱃속에서 절반이나 키워버린 아이를 저버릴 있을까. 나는 아이의 움직임을 이렇게 느끼는데. 님과 나는 며칠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주노가 태어났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조그마한 아기가 수술을 견디고 아파하거나 후속 조치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속을 끓이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감정들이 작은 돌맹이가 되어 한구석에 숨어있을 즈음 나는 둘째 아이를 가졌다. 모든 고민과 감정들에도 불구하고 둘째 아이를 가지려고 했던 , 내가 동생들과 느끼는 연대, 위로가 크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 살갑지는 않지만 서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심지어 위로가 된다고 느끼며 산다. 물리적으로 멀어도 느껴지는 연대가 좋아서, 나는 주노에게도 그것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리아를 위한 두번째 초음파가 다가왔다. 주노 느꼈던 기대보다는 아이가 어떤 문제가 있으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컸다. 아이의 작은 문제 자체가 걱정이라기 보다는 그걸 해결하기 위해 아이가 잠시나마 신체적으로 힘들어야 일이 싫었다. 성별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이가 무탈하면 그걸로 이었다. 초음파 내내 얼굴엔 긴장이 가득했다. 천진난만하게 아이의 성별에만 잔뜩 관심 있던 님은 연거푸 괜찮냐고 묻더니 끝나고 나서도 그렇게 표정이 좋았냐고 물었다. 님은 언제나 나보다 긍정적이고 천진하다.


초음파 마지막에서야 아이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안도와 함께 주노와 함께 겪은 수술, 회복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여러 후속 조치들을 떠올렸다. 모든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회복실의 주노, 코를 통해 호스를 넣어 이물질을 빨아들일때 자지러지게 울던 주노, 코를 고정해주는 보조물을 끼고 있던 주노, 나처럼 입술과 코가 비뚤어져있는 주노, 남들보다 이가 하나 주노. 정말이지 둘째 생각은 안심에서 끝나고 주노 생각만 났다. 묘하게도 그때 주노는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나는 주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의 부모님은 내게 구순열이 있는것이 본인들 탓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부채감을 어떤식으로라도 갚으려 하신다. 나는 구순열이 부모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주노의 구순열도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노의 내려앉은 가슴도 님의 탓은 아니다. 그것이 사는데 조금 고민을 보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에게 구순구개열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노를 떠올린건 일까. 주노는 내게 아픈 손가락이 될까. 나는 결국 부모님처럼 아이에게 빚이 있다고 느끼고 무언가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까. 그렇게 되지 않길 빌어본다. 나 자신이 주노가 가진 신체적 차이를 슬픈 것으로 인식하는 순간 아이도 은연중 그렇게 지도 모른다. 그것은 빚이 아니다. 슬픈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로서 이야기가 많아지고 시야가 넓어지고 그에따라 마음도 넓어지리라. 흔들리는 깃발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바람을 아는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너도. 그리고 네덕에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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