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프랑스 이동제한.

찬란한 봄, 우리 가족은 집에 갇히고 말았다.

by 몽아무르

주노의 세살 그리고 리아의 일곱달


우리 가족은 역사에 기록될 순간을 살고 있는듯 하다. 좀비영화에서 보던 처럼 스스로를 집에 가두고 식량을 보충한다. 밖은 위험하다. 많은 시설이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서로가 잠재적 위험일까 두려워 거리를 둔다. 의심. 불신. 일단 내가 살아야한다는 생존본능. 이런 세상에 아이가 살고 있다니. 해가 이렇게 좋고 초록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꽃이 봉오리를 만들어 만개할 준비를 하는데. 하늘은 이렇게 파란데. 아이는 집안에 갇혀 바깥을 본다. 하늘로 날아가는 비눗방울들이 차라리 자유롭다.


예전에 버드박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 사람들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집이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목숨을 걸어야한다. 그리고 세상에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들은 바깥에서 나무를 타고 풀을 밟으며 노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유일한 놀이터는 자연스레 안이 된다. 그런 아이들에게, 남자가 바깥에서 신나게 놀던 자신의 어린시절을 이야기해준다. 아이들은 꿈이라도 꾸듯, 내게는 당연했던 놀이의 순간을 듣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는 이야기가 쓸데없는 희망과 모험 정신을 심어줄까봐 걱정한다.


마스크 착용이 특별하지 않은 아이들. 미세먼지라는 말에 익숙한 아이들. 나의 아이들의 미래가 바이러스와 환경 파괴라는 좀비에게 밀려 집안에만 갇혀버린다면.


이제는 거리에서 산책이라도 하면 벌금을 물리겠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비장한 얼굴을 보며 심란해져버렸다.

아이에게 학교에 가지 못하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묻는다.


"그럼 막스 아벙튀흐도 못가요 ?"


막스 아벙튀흐는 아이가 좋아하는 키즈카페 이름이다.


"응. 가지."


아이는 나가지 못하는 시간들이 답답했는지 그런다.


"난 세균들이 있는게 싫어. 내가 밖에 나가서 물리칠거아. 내가 비누를 쏠거야 !"

그리고나서 저녁. 긴긴 돌봄 시간 지친 나는 영화 관람을 제안한다. 얼마전 아이가 알라딘을 책으로 재밌게 봤기에 만화를 보자고 했다. 고립 덕에 횡재한 아이는 즐겁게 만화를 보고는 그런다.

"엄마 지니에게 사람들이 아픈지 세균이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면 되요 ! 그러면 내가 막스 아벙튀흐에 있어요 !"

그래. 세가지 소원 하나를 인류를 위해 쓰겠다는 거구나. 이유는 매우 개인적이지만.


그렇게 공식적 고립 일일차가 지나갔다. 우리는 바이러스라는 적과 전쟁중이라는 대통령의 비장한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본걸까. 아무튼. 마음이 슬프다. 바이러스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이 되면 우리가 망친 환경이 다시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짓누를 같아서. 내가 지금 이런 세상에 아이를 이나 내놓다니. 미안한 마음이 커다란 책임감으로 돌아온다. 그래. 버드박스의 엄마처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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