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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태 Nov 07. 2022

[행복한 김 과장 이야기] 4화

#4

김 과장은 퇴근해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정부 관료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회의하는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IMF가 뭐야?”

현숙이 심드렁하게 김 과장에게 물었다.

“나라에 달러가 없나 봐. 심각하대.”

얼마 있다가 한보 그룹 부도와 함께 은행들이 연쇄 도산을 했다. 김 과장이 이용하던 상업은행, 제일은행도 문을 닫았다. 통장에 있던 푼돈을 얼른 찾아야 했다. 수많은 은행과 여러 기업들이 연쇄부도로 쓰러졌고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다.

김 과장의 회사도 신입사원을 더 이상 뽑지 않고 기존 직원도 명퇴를 당하고 있었다. 그때 김 과장의 형이 다니던 회사에서는 부서 전체가 없어져서 일시에 300명이 정리해고되었다고 한다. 다행인 점은 형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때 이후 우리나라에는 비정규직이 생겼고 정리해고, 구조정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그즈음 2000년 초반 회사 동료들은 김 과장만 빼고 모두 주식 열풍에 빠졌다. 벤처라는 이름만 달면 수십 배 오르던 시기였다. 영웅담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다들 나가떨어졌지만 유일하게 어떤 직원은 5천만 원을 벌었다고 소문이 났다. 다른 부서의 직원이었는데 5대 일간지를 보며 경제신문도 여러 개 구독한다고 했다. 

김 과장은 그의 성공담을 들으며 그렇게 공부를 해야 돈을 버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게임에 빠져있던 김 과장은 남들이 그렇게 주식과 부동산을 해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즐거웠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렸다. 평소 축구를 좋아하는 김 과장은 가족을 데리고 한강 둔치에 응원을 하러 나갔다. 전면에는 커다란 전광판이 설치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모였다. 저마다 붉은색 티셔츠와 악마 뿔을 머리에 달고 응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 과장 가족도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 과장과 4살이 된 영희가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었다. 티셔츠와 악마 뿔을 파는 상인들이 바쁘게 사람들 사이를 오고 갔다. 영희에게는 빨간 불빛이 나오는 악마 뿔 머리띠를 사주었다. 

“대한민국~ 짜자 자 짝짝!”

사람들이 앞에 나선 응원단의 구호에 맞춰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대형 전광판에 등장하는 선수들이 나오면서 아나운서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네 오늘 드디어 이탈리아와 16강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선수들 입장합니다. 안정환 선수를 비롯해서 설기현, 박지성, 이영표 선수도 보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 선수들 뭔가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히딩크 감독의 얼굴이 나타나자 사람들의 응원소리가 터져 나왔다. 

"히딩크! 히딩크!"

예선에서 멎진 경기를 펼친 히딩크 감독의 인기는 절정에 달해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그의 존재는 어떤 스타 못지않을 정도였다. 모두 예선전에서 기대 이상의 승리를 거둔 덕분이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공격수들이 이탈리아 문전에서 좋은 찬스를 얻었다. 

페널티킥!

응원단은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대한민국~ 짜자 자 짝짝!"

김 과장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절호의 찬스가 우리 팀에게 온 것이다. 페널티킥의 주인공은 안정환 선수였다. 공격수이며 팀의 에이스였기에 모두들 기대를 하고 화면을 응시했다. 주심의 호각소리에 안정환 선수가 천천히 뛰어나갔다. 

"슛~" 

그러나 힘이 없이 날아간 볼은 애석하게도 골키퍼에게 안기고 말았다. 응원단의 분위기는 일시에 가라앉았고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 과장도 아쉬워서 한마디 거들었다. 

"아이구.. 저런 어쩌냐.. 나 같으면 넣었을 텐데.."

김 과장은 군대 시절 황금발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라 내심 너무나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다시 경기는 이어졌다. 페널티킥의 불운 때문이었을까. 우리에게 위기가 다가왔다. 결국 코너킥 찬스를 잡은 이탈리아의 비에리가 선제 헤딩골을 성공시켰다. 

"우..."

일제히 사람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카메라는 안정환 선수의 표정을 잡으며 마음고생이 심하겠다고 멘트를 날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찬스가 찾아왔다. 후반전이 한참 지났을 무렵, 이탈리아 수비수의 실책에 이어 설기현 선수의 동점골이 터져 나온 것이다. 김 과장과 응원단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모르는 사이지만 옆 사람과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도 많았다. 

“와아~” 

사람들의 함성과 기쁨의 눈물이 뒤섞여 한강 둔치에 울려 퍼졌다. 기적적인 골이었다. 

다시 안정환 선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아나운서가 이렇게 말했다.

“안정환 선수는 설기현 선수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네 어쨌든 연장전에서 꼭 안정환 선수가 뭐 좀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드디어 연장전이 시작되었고 아나운서의 바람대로 연장 전반전 막판에 기회가 왔다. 길게 센터링 한 볼이 안정환 선수에게 날아갔다. 그 순간 안정환 선수가 머리를 살짝 비틀며 헤딩을 했다. 그의 머리를 스친 볼이 골키퍼의 손을 벗어나 한쪽 골네트를 갈랐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 순간 김 과장은 대한민국이 마치 들썩인 것처럼 그런 진동을 느꼈다.

“와아~”

사람들은 진짜 한강이 떠나갈듯한 기세로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 틈 속에서 김 과장도 영희를 부둥켜안고 기쁨의 세리머니를 만끽했다.

“와~ 대한민국~”

안정환 선수는 그 유명한 반지키스를 하며 응원단의 환호성에 보답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은 결국 우리나라의 승리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고수부지 근처 도로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대규모 응원단이 이동하면서 거리는 승리의 물결로 흥청거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함박웃음을 짓고 기쁜 마음으로 귀가를 했다. 어떤 사람들은 버스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며 대한민국을 연호했고 윤도현의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김 과장과 가족들도 그 속에 섞여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김 과장의 생애를 통틀어 그처럼 기쁜 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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