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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넘어파 Feb 16. 2024

5년 치 교사 월급으로 2억 만들기

장인어른께 100억 상속받기 11화

@ pixabay



대학 졸업 후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3월 16일, 첫 월급이 통장의 문을 두드렸다. 1,700,210원. 요 귀요미 녀석. 아담함을 넘어서 모자람이 충분한 쪼꼬미.


연금, 교직원공제회 장기저축, 세금 등을 모두 제하고 통장에 딱 찍힌 금액이 저 귀요미 녀석이었던 거다. 첫 월급이니만큼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여자친구에게 줄 선물 사고, 친구들에게 밥 사고 하다 보니 3월 말도 되지 않아 통장은 밑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4월 중순까지 숨만 쉬고 살아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3월 말에 방과후 수업비로 40만 원가량 들어왔다. 또 이곳저곳 필요하다 싶은 곳에 쓰다 보니 통장은 금세 비어갔다. 4월 달도 비슷한 패턴이었다. 4월 말이 되기도 전에 통장은 비어갔고 방과후 수업비를 수혈받아 간신히 다음 월급날까지 버텼다.


3, 4월 두 달 동안 선생님들과도 어느 정도 친해지고 학교 분위기 파악도 끝났다. 5월부터는 내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꿈꾸던 걸 학교에서 펼치기 시작했다. 교사가 되면 길을 잃고 헤매는 학생들을 모아 정신교육으로 무장하여 새 사람 만들겠다는 다부진 포부가 있었다. 5월부터는 퇴근 시간이 되어도 퇴근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가장 말썽인 열댓 명의 중2 남학생들을 모아 밤 9시까지 수업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밤 10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오후 5시에 여자친구에게 전화 오면


"오빠 수업 중."


저녁 7시에 여자친구에게 전화 오면


"미안, 오빠 수업 중."


저녁 9시에 여자친구에게 전화 오면


"진짜 미안, 지금 정리 중. 조금만 있다가 전화할게."


교직 첫 해 만난 중2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5년 동안이나 이렇게 살았다.(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캠퍼스에 있었고 나는 중학교에서 근무하다 고등학교로 옮겼다.)


첫 해에는 학교 근처의 원룸에서 살았는데 2년 차부터는 학교 관사로 숙소를 옮겨서 진짜 말 그대로 학교에서 살았다. 고등학교에서는 새벽 6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학생들과 시간을 보냈다. 나는 열정이 지나치게 넘치는 교사였고 학교는 나를 잘 활용했다.


어쨌거나 이렇게 살다 보니 의도치 않게 돈이 모였다.


학교 관사에서 소요되는 주거 비용은 원룸보다 쌌고, 삼시세끼 학교에서 먹는 급식은 가격도 저렴한데 영양가는 풍부했다. 헬스장 회원권이 없어도 뛰고 싶으면 운동장에서 뛰면 되고, 근육을 찢고 싶으면 턱걸이하면 된다. 또래 선생님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은 분기별 행사였을 정도로 뜸했다. 돈이 들어갈 데라곤 주말마다 여자친구 만나러 가기 위해 지출한 교통비와 데이트 비용, 각종 경조사의 부조금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뭐, 대단히 아끼겠다는 결의 없이 필요한 데 돈 쓰면서도 자연스레 실 수령액의 50% 이상은 저축할 수 있었다. 첫 해 5월부터 1년 만기 월 120만 원짜리 적금을 부었고 차차 금액을 올려 5년 차 때는 월 150만 원씩 저축했다.  


가끔 굵직하게 목돈이 빠질 때도 있었다. 주로 여행 비용이었다. 부모님 모시고 베트남 여행, 여자친구와 필리핀 해외 봉사, 혼자 떠난 인도 여행, 기타 국내 여행 등등.


결산하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의 시간 동안 7,500만 원가량 모였다.    




부자아빠에게 본격적으로 부자 수업을 듣기 시작한 건 2014년부터였다. 별다른 생각 없이 적금만 붓는 게 맞나 싶어 부자아빠에게 질문했다.   


"아버님! 주거마련 대비 통장, 자녀교육 대비 통장 등등 각각의 목적을 갖고 돈을 따로따로 모아가야 할까요?"


"돈은 뭉쳐있을 때 힘이 센 법이야."


"아.. 그렇군요!"


그리하여 계속 별생각 없이 돈을 모아갔다. 아직 투자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배우지 않았고 나도 학교 일에 빠져 사느라 딱히 관심 두지 않았다.



2017년 어느 날. 부자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여유 있을 때 서울로 한 번 올라와."


"당장 가겠습니다."



부자아빠는 만나자마자 책 한 권을 주셨다. 가상화폐에 관한 책이었다.


"비트코인이라고 들어봤어?"


"아니요."


아직 가상화폐 광풍이 불어오기 전이라 비트코인이나 가상화폐가 언론에 자주 언급되지 않았다. 부자아빠는 서류가방을 가져오셨다. 가방을 열자 그간 모으고 모아서 빽빽이 들어찬 신문 기사와 경제 매거진 쪼가리들이 보였다. 가상화폐에 관한 기사들이었다.


"내가 몇 달 전부터 가상화폐에 관해 공부하고 있거든."


"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왔어."


"오우!"


"있는 돈 끌어모아서 가상화폐를 사. 대신 두 가지 약속만 지켜줘."


"그게 뭐죠?"




첫 번째,
절대 팔지 마라.



두 번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뭐, 그게 어려운 일이라고. 


부자아빠가 주식으로 꽤나 큰돈을 굴리고 계시다는 걸 알았다. 내심 나에게도 종목을 알려주시면 매수할 텐데라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데 왠 걸. 가상화폐라니. 부자아빠가 그간 모은 신문 기사를 보며 나는 확신했다. 뭔가 있긴 있구나.


수중에 모아진 7,500만 원 중 6,000만 원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조금 뜬금없을 수 있는데 남은 1,500만 원 중 1,000만 원은 어느 기관에 기부했다.


투자는 정말 간단했다. 빗썸 앱 설치. 계좌 연결. 6,000만 원 송금.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1,500만 원씩 4가지 종류의 가상화폐 매수.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을 몇 번만 움직이니 그간 은행 통장에서 가지런히 누워 자고 있던 6,000만 원이 위, 아래로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통장에 남겨 둔 500만 원마저 며칠 뒤 시원하게 가상화폐로 바꿨다. 가즈아.   


6,500만 원은 어떻게 됐을까?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2억을 넘겼다.







부자아빠는 급격한 변동성 속에서 내가 정신을 잃을까 봐 자주 전화하시고 계속 말씀하셨다.


절대 매매하지 마라.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투자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



순서가 좀 잘못된 것 같기도 하다만

가상화폐를 매수한 이후, 부자아빠의 투자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부자학 개론은 끝났다. 실습을 동반한 심화 수업이 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나는 부자아빠와의 약속을 잘 지켰을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그 약속은 대단히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었다.






ps. 요즘은 암호화폐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지만 제가 처음 투자하던 때에는 가상화폐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였기에 가상화폐로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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