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투자하는 수학교사
장인어른께 100억 상속받기 12화
결혼을 앞둔 32살 총각 고등학교 수학교사는 5년 간 모아 온 6,500만 원을 과감하게 코인에 투자했다. 누구의 권유로? 나에게 코인을 알려준 건 친구도, 후배도, 선배도, 동료 교사도 아니었다. 바로 여자친구의 아버지였다. 2017년에 말이다.
나의 부자아빠,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투자에 앞서 내게 두 가지만 약속하라 했다.
첫째, 절대 매도하지 마라.
둘째,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마라.
결론부터 말하면 두 가지 약속을 모두 어겼다.
"훈이야, 나는 주식 투자를 오래 해왔잖아."
"네."
"주식투자를 인베스트먼트 관점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고, 트레이딩 관점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어."
"네."
(여기서 인베스트먼트란 기업의 가치를 보고 장기간 주식을 보유하는 걸 의미하고 트레이딩이란 오로지 주가의 움직임만 보고 단기간 내에 사고파는 걸 의미한다.)
"나는 인베스트먼트 관점에서 투자했기에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고 생각해."
"아하."
"트레이딩은 결국 0으로 수렴한다고 봐."
"그래요?"
"물론, 트레이딩으로 큰돈을 버는 천재적인 사람들도 있어."
"유튜브에 종종 나오죠."
"그런 사람들은 정말 극소수야."
"그렇군요."
"평범한 사람들은 좋은 기업의 주식을 사서 오래 가져가는 게 주식 투자 성공 방법이야."
"그럼 코인도 매매하지 않고 오래 가져가야 할까요?"
"코인은 주식과는 비교가 안 되게 변동성이 크지."
"그런가요?"(나는 주식, 코인 둘 다 문외한이었다.)
"매매하기 시작하면 금방 0으로 수렴할 거야."
"그렇군요."
"코인 사게 되면 최소 십 년 이상은 가져간다 생각하고 잊어버려."
"십 년이요?"
"본업이 있으니깐. 본업에 충실해."
"아, 네네."
"그리고 코인 투자한다는 얘기는 어디 가서 하지 마."
"왜죠?"
"사람들이 좋게 보지 않을 거야. 코인을 도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거든."
"아, 그렇군요."
(2017년에는 그런 분위기였다. 지금도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이 많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흔들 거야. 그러니 조용히 투자하는 게 좋아."
"알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가상화폐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된다. 부자아빠의 지침대로 투자 후 잊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까이꺼.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앞으로 나를 워런배핏(나는 배 씨다.)으로 불러달라고. 진정한 가치투자가 뭔지 보여주겠다고.
통장에서 고요히 자신의 쓰임을 기다리던 6,500만 원은 그렇게 가상화폐거래소로 보내졌다. 나의 원화는 가상화폐가 되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가상화폐는 주식과 다르게 상한가, 하한가도 없다. 한번 상승을 타기 시작하면 몇 시간 만에 40%, 50%는 우습고, 하락할 때는 벼락 떨어지듯 쭉쭉 내려간다. 이유가 있으면 이유가 있는 대로 오르거나 내리고,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오르거나 내린다.
이 어마어마한 거친 파도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꿈틀 됐다.
'혹시, 내가 트레이딩의 천재면 어떡하지?'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만약 그렇다면 엄청난 변동성의 파도를 그냥 흘려보내기는 너무 아까운데.'
당시 여자친구에게 청혼할 계획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돈을 가상화폐로 바꾸어 버리는 바람에 반지 살 돈이 없었다. 돈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나는 부자아빠와의 약속을 깨고 트레이딩을 시작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심장이 쫄깃하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야 할 만큼 이 과정은 정말 미쳤다. 우와와와와!!! 성공이다. 단, 몇 번의 클릭으로 한 달치 월급을 훌쩍 뛰어넘는 돈을 벌었다. 다이아 반지를 샀다. 목적 달성했으니 그만해야지. 잠자리에 누웠다. 아른거린다. 빨간 장대 봉과 파란 장대 봉이. 한 번 더? 어느새 나는 1분 봉 차트를 보고 있다. 초단타의 귀재가 되리라. 이미 많이 올랐다고 판단하여 매도한다. 뭐지. 갑자기 쭉 오른다. 안돼!!!!@#!@@#%^#&. 성급하게 다시 산다. 젠장. 코인 개수만 줄어들었다. 이제 자자. 잃어버린 코인 개수가 아른거린다. 만회해야 해. 오호호호. 성공이다. 만회가 됐다. 휴. 자자. 자자. 자야지. 자라고. 워렌배핏은 얼어 죽을.
깨달았다. 천재가 아니구나. 다행히도 거기서 멈췄다. 좀 더 솔직해지면 이후에도 매매를 하긴 했다. 업비트에 계좌를 하나 더 만들어 300만 원 정도 보냈다. 빗썸에 있는 코인은 절대 건드리지 않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업비트에서 소소하게 매매하며 천재가 아님을 확실하게 깨닫고 매매는 접었다.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이어진 엄청난 대상승장에서 6,500만 원으로 시작한 내 코인의 가치는 2억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1년 이상 이어지는 엄청난 하락을 정면으로 맞으며 원금의 삼분의 일까지 코인의 가치가 쪼그라드는 걸 목격해야 했다. 허허허허허허.
코인 가격이 한참 많이 올라서 내 기분도 날아갈 것 같던 날이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 태야!"
"뭐, 좋은 일 있어? 목소리가 되게 밝네."
"아니, 뭐."
"뭐, 있고만."
두 번째 약속을 깰 위기에 처했다. 이 친구는 주식 투자가 직업이다. 나에게도 주식투자를 시도 때도 없이 권했다. 나도 투자로 돈 번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다. 결국 이야기했다.
"코인으로 돈을 좀 벌었어."
"오 진짜?"
내가 왜 말했을까. 코인이 오르면 빨리 팔라고 전화가 오고, 떨어지면 그러게 왜 안 팔았냐고 핀잔한다. 투자 선배인 친구는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이었지만 꽤나 피곤한 일이었다. 코인은 실체가 없으니 팔고 주식으로 넘어오란다. 참다 참다 신경질을 한 번 크게 냈다. 이후 잔소리는 멈췄다. 잃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는 친구는 크게 욕심내지 않고 이익을 보면 매도하는 편이다. 자신의 매매 방법은 큰 손실을 피해 가는 것이지만 거대 상승도 비껴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2018년 초 2,800만 원대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의 가격은 2019년 초 30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이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2020년 말 드디어 2,800만 원을 회복했고 2021년에는 8,000만 원을 넘어섰다. 원금의 삼분의 일까지 쪼그라들었던 내 코인의 가치는 2억을 넘어선 새로운 고점에 도달했다.
@ pixabay군대 전역 후 나는 홀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넘어가 윈난성의 리장이라는 곳까지 갔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라오스 여행을 추천했다. 중국에서 버스를 타고 라오스로 이동했고 라오스 여행 후 메콩강을 건너 태국으로 넘어갔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태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방콕 공항을 갔다. 방콕 공항 안에 있는 한 서점 벽면에 세계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지도를 보면서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됐다. 태국이란 나라는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했던 나라였다. 그런데 다시 보니 며칠간 배 타고 기차 타고 버스 타면 갈 수 있는 나라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나의 지경이 넓어졌음을 기분 좋게 느꼈다.
코인 투자 후 돈에 대한 나의 지경 또한 넓어졌음을 느낀다. 투자 초창기에는 상승과 하락에 따라 일희일비하고 변동성을 참아내지 못하고 매매하기도 했다. 시간은 나에게 일희일비하지 않는 강단을 주었고 변동성을 참아낼 줄 아는 무덤덤함도 갖게 했다. 2021년, 새로운 고점에 도달했을 때도 나는 팔지 않았다. 이후 비트코인은 2,000만 원 초반대까지 떨어졌고 다시금 상승하여 7,000만 원대에 도달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2017년 말에 도달했던 2억이란 봉우리는 더 이상 나에게 대단히 높은 봉우리가 아니다. 5년 간 열심히 돈 모아서 투자를 잘하면 도달할 수 있는 높이로 느껴진다. 물론 운이 매우 좋았다. 어찌 됐던 내 지갑은 2억 이상을 담을 수 있는 크기가 되었다. 부자아빠가 물려주신 낡은 지갑을 보며 지금은 2억짜리 장지갑이지만 시간이 흘러 10억, 100억짜리 장지갑으로 만들어 보리라 꿈꿔본다.
내 지갑이 2억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려면 지갑에서 2억이 빠져나가는 것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아주 뼈아픈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