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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경 Jun 21. 2021

사투리처럼 잠에서 깨면

최승자 - 삼십세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 삼십세 (部分)



  1

  2009년 1월이던가, 대학교 합격 소식을 접하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기뻐서 울어봤다. SKY 경영학과를 졸업하면 CEO가 된다고 믿던 때였다. 그 겨울에 나는 처음으로 엄마와 술을 마셨다. 나는 등록금 문제로 엄마 아빠가 말다툼한 걸 안다고 말했다. 효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키 크고 잘 생긴 CEO가 되고 싶었다.


  2

  신입생 환영 행사 때문에 처음으로 서울이란 데를 와봤다. 나는 서울의 지하철 역 이름을 외는 술 게임이 좋았다. 마시면서 배우는 즐거운 게임. 얼마 후 사람들은 내가 부산에서 온 줄을 모르고 있었다.


  3

  사람들이 영어로 토론을 했다. 그 사람들도 나처럼 때리면 아파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4

  리더십 어쩌고 하는 경영대 교수의 교양 강의를 들었다. 나는 CEO가 우스워졌다. 날이 가고 사람들이 죽었다. 울기도 하고 안 울기도 했다. 가난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이제 키 크고 잘 생긴 펀드 매니저가 되고 싶었다. 서울에 온 지 여러 해가 지났고, 강남엔 좀처럼 가질 않는다.

 

  5

  빛나지 않는 바람이 불고, 본 적도 없는 곤충이 울었다. 전화도 안 했는데 사람들이 부재중이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갔다. 외국어를 둘씩이나 공부하면서 나는 사투리처럼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러면 다시 누울 수도 없다.


  6

  영어로 토론을 했다. 맞아도 덜 아픈 것 같았다.


  7

  나는 새해가 되어도 소원을 빌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졸업도 그렇게 했다.


  8

  나는 키 크고 잘 생긴 펀드 매니저가 될 수도 있었다.



2015년 대학을 떠나며 썼다가 2021년에 다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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