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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해Jung Jul 06. 2024

식물을 키운다는 것




식물을 좋아하지만 식물을 모르는 내가 식물을 키운다. 모두의 예상대로 여럿 떠나보냈다. 처음에는 내 두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정말로 내 눈빛과 손길에 어두운 기운이 서려있는 게 아닐까. 나는 내추럴 본 똥손인가 를 의심했지만 나중에는 식물을 키우는 것은 떠나보낼 것은 떠나보내고 남은 것과 함께하는 것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논리로 상황을 합리화시켰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물 볕 바람이 중요하다. 말을 할 수 없는 식물은 말대신에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신호 보내는데, 그 신호를 해석하고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 금손,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고 오로지 본인의 기분에 따라 제공하고 싶은 것을 제공하고 있는 사람을 똥손이라 하는데, 나는 금손과 똥손 사이에서 똥손 쪽에 가까운 어딘가에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식물의 요구에 상관없이 내 기분에 따라 가끔 물을 주거나 분갈이를 해왔다. 상황이 그러하니 남아있는 친구들 중에서도 시들시들한 친구가 여럿 있다. 그런데 올해 이 친구들이 생기를 되찾고 있다. 시름시름하던 아가베, 올리브나무, 아악무가 새잎을 틔운다. 기분이 좋다. 즐겁지만 나는 고민한다. 이유가 뭘까, 나는 한결같이 내 기분에 따라 물을 줬을 뿐인데 왜 갑자기 건강해지는 걸까. 나는 어떤 것을 행하다가 행하지 않았나. 행하지 않다가 행한 것은 무엇인가. 식물이 공간에 적응하는 데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100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온다는 대풍이 드는 전설 속의 해, 올해가 그런 해일까. 


나는 식물이 시들시들한 이유도, 죽은 이유도 몰랐는데, 이제는 시들시들하다 파릇파릇해지는 이유도 모르게 되어 혼란스러웠다. 한참을 고민 끝에 나는 결론에 닿았다. 나는 이들의 섭생에 별다른 관여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결론이다. 그래 처음부터 이건 내 소관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리해 보자면 이러하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떠나보낼 것을 떠나보내고 남은 것들과 함께하는 것이며, 내가 뭘 잘 못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뭘 잘해서 잘 사는 것도 아니더라 라는 낭만적인 데다가 기적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대부분은 것은,

그래 그런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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