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더럽혀져 있던 방을 정리했다. 말끔해진 방을 휘익 둘러보는데 언젠가 책장에 붙여 둔 작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께 아마도 한 5년 전쯤 받은 쪽지 같은 편지였다.
「부족한 나와 지금까지 오랜 시간 함께해 줘서 고마워요.」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같이 있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은 지가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노트북을 열었다. 포스터를 만들고 문장을 다듬고 교열을 봤다. 옆에는 동백꽃을 틀어 놓았다. 글 볼 때는 아무것도 틀지 않지만 왠지 오늘만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구질구질하고 박복한 삶 속의 동백이, 그의 태연한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동백이라는 이름이 참 예쁘다. 내 이름도 목화나 목련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러다 인생이 늦봄 꽃처럼 금방 저버릴 것 같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뤄지지 않아도 되는 작은 소망일 뿐이었다.
다시 눈을 돌리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그 애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였다.
「내가 이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의 연인이 아닌 내가 이상이 아닌 이에게 과분한 글귀를 받았더랬다. 가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과거들이 구석에서 튀어나온다. 가슴 저미는 사건이다. 이런 자질구레하고 찌질한 일들은 제발 내 삶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건만, 더 선명하게 남는다. 기억으로, 문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