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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Jan 18. 2021

나를 생각해 주오






기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있었다. 기쁘게 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 앞에 주어진 기쁨의 삶은 퍽 고달파 보였다. 세상은 기쁨에게 기쁜 일만 가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고, 사람들은 기쁨이 짜증을 내거나 슬퍼서 울 때 왜 이름값을 하지 않느냐며 놀려댔다. 이유 있는 분노와 슬픔이 관련 없는 것과 함께 저울에 올라가 조롱당했다. 그때마다 기쁨은 우스갯소리로 곧잘 넘기곤 했지만 삶의 무게는 웃으며 넘긴 순간만큼 그의 이름에 얹혀 갔다.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캔디 정도가 아니라 외로워도 슬퍼도 기뻐야 하는 기쁨의 인생은 가여움의 총체였다. 기쁨은 기쁨으로 살아도 기뻐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기쁨으로 사는 게 버겁다고 했다. 기쁨의 무게에 짓눌린 기쁨의 일상이 위태로웠다.


어느 날, 삶의 하중에 견디지 못한 기쁨이 폭삭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기쁨도 울 줄 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날 이후 기쁨은 사라졌다. 기쁨이 기쁨으로 불리지 않는 세상을 찾으러 간다고 했다. 기쁨이 울다가 떠난 자리에 그리움이 제비꽃처럼 피었다.


기쁨이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세상에서 기쁨의 흔적을 찾는다. 괴로움. 슬픔. 납작하게 깔린 언어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 꽃말은 마치 유언 같다고 생각한다. 미련처럼 남겨진 꽃. 그 안의 유언 같은 꽃말을 떠올린다. 나를 생각해 주오. 나를 생각해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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