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연애 #추억
”너는 걔를 왜 좋아해?”
”너는 걔 어떤 점이 좋아?”
”너는 걔랑 왜 사귀냐?”
아주 오래전 일인 데다가 그때 일을 떠올리지 않은 지를 헤아리는 일도 두 손으로도 모자라다. 그만큼 기억의 농도가 옅어졌다. 당시 선배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인지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그게 무엇이든 중요한 건 그 말이 나를 바늘처럼 찔렀다는 것이다. 말의 뒷면에는 그 애 얼굴이 달걀처럼 갸름하지도 콧날이 오뚝하지도 눈이 동그스름하지도 않은데, 그 애한테 푹 빠진 연유를 도통 모르겠다는 물음표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랬다. 분명 그 애는 전형적인 미인상과 멀었다.
그 애는 학교 후문에서 10분 거리의 2층 짜리 주택 반지하에 살았다. 그 애 친구 집은 학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웠다. 내가 사는 하숙집은 행정구역이 학교와 달랐다. 하숙집에 가려면 연두색 마을버스의 종점에서 하차해 기찻길 아래 굴다리를 지나고, 10차선 왕복 대로 아래 지하도를 건너고서도, 거미줄 같은 골목길에서 길을 잃지 않아야 했다. 보통 아침에 집을 나서면 사위가 어두워지고 귀가했다.
우리는 공강 시간에 자주 어울렸다. 시간이 많이 남을 때에는 그 애 집에서 수다를 떨고 장난을 쳤다. 아니면 그 애 친구 집에서 만화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재미없는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혹은 숫제 남의 집이라는 생경함을 잊은 채 두꺼운 전공책을 베고 한낮에 낮잠을 청했다. 그렇게 나는 오후에 빛이 창틈으로 스며들듯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그 애에게 빠졌다. 하숙집을 학교 근처에 구했거나 아예 기숙사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때로 어떤 인연은 예기치 못한 사소한 이유로 맺어지기도 한다.
“밥 먹고 갈래?”
어느 날에는 그 애 집에서 밥을 먹었다. 밥반찬은 별 다를 게 없었다. 집에서 엄마가 해주던 상차림과 비슷했다. 식당 반찬은 달고 짰는데 그 애 반찬은 심심했다. 이걸 계속 먹을 수 있다면 어떨까, 상상을 했는데 참으려고 해도 웃음이 자꾸 삐져나왔다. 오랫동안 질리지 않을 거 같았다. 오히려 특별할 게 없어서 나에게 특별하게 여겨졌다.
그러다 물에 섞지 않은 물감을 칠한 듯 그 애를 향한 마음이 선명해지는 일이 있었다. 볕이 한층 따가워지고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눅눅해질 무렵이었다. 어떤 선배가 초복 즈음이라고 닭을 같이 먹자고 말을 꺼냈고, 누군가 그 애에게 요리를 잘한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던 것 같다. 또 다른 누군가 요리 솜씨 좀 보고 싶다고 거들었고, 그 애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단 걸 느꼈을 것이다. 그 애가 집에서 닭볶음탕을 만들어 주겠노라 답하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때는 다 같이 뭔가를 먹는 일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토요일 낮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그 애 집 앞에 도착했다. 철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벽쪽으로 부엌 창이 나 있었는데 창틈으로 그 애가 보였다. 아마도 닭 손질을 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겨우 스물하나 둘 먹은 애가 미끄덩거리는 닭을 잡은 채 꽁지를 자르고 뱃속의 내장을 제거하고 칼로 토막을 냈다는 게 새삼 놀랍다. 나는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닭 대신에 수저통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 짝을 맞춰 상에 올려놓았다. 얼마 있지 않아 사람들이 들이닥쳤고 금세 집안 공기가 데워졌다.
드디어 그날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그 애는 행주로 냄비 손잡이를 감싸 쥐고 상에 올려놓은 뒤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모락모락 김이 났고 빨간 양념으로 뒤범벅된 닭이 자태를 드러냈다. 닭과 감자, 당근이 소복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너나 나나 젓가락질을 하기 바빴다. 그날 그 애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직 사귀기도 전이었다. 남자들의 속도는 종잡을 수 없는 데가 있다. 남녀의 속도 차는 시작하는 추진력이 되고 한편으로 끝맺는 까닭이 되기도 한다.
오래전 선배가 물었던 말의 속뜻을 모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잘라 말해 그 애가 예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답했다. ”왜요? 내 눈에 예쁘기만 한데요.” 아니면, “선배 눈에는 안 예뻐요?”, 라고 반문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역시 기억이 흐릿해진 탓에 워딩이 정확하지 않다. 허나, 중요한 건 그땐 내 마음이 그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