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호 Sep 07. 2022

첫날 정신

#글쓰기 #슬럼프 #꿈

어느 토요일이었다. 새벽녘  공기 때문이었는지 평소보다 일찍 잠이 깼다.  집안이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밤처럼 고요했다. 이불을 가슴께까지 바짝 끌어올리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핸드폰을 환히 밝혔다. 오전 5시쯤이었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엄마가 전날  했던 말이 말풍선처럼 떠올랐다. 말랑말랑한 글을 써보는  어때?


마침 전날 저녁 로또를 사러  일이 떠올랐다. 핸드폰을 다시 밝혔다.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금세 일곱 단락의 짧은 글을 썼다. 벚꽃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산문 로또와 산책이었다. 글을 쓰느라 집중해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지는 통에 잠에 들었다가 10시쯤 깼다.


인스타그램에는 좋아요와 댓글이 제법 달려 있었다. 긴장  설렘 반으로 댓글을 살펴봤다.  대학 동기가 남긴 댓글에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댓글에는 ‘이런   자주 써줘라고 쓰여 있었다.  말에 힘입어  뜨거운 줄도 모르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서너  정도 올렸을 무렵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짧게 쓰고, 장면을 보여주고,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항상 글을 쓰기  주문을 외우듯이  가지 규칙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주문이 통했는지 “재미있다”, “ 쓴다”, “ 내면 사겠다라는 등의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았다.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그렸던 일이기에 가슴이 막혔다. 한편으로 출간된 책과  글을 비교하곤 가슴이 무거워졌다.  마음이 무거워지니까 글도 무거워졌다. 점차 댓글도 좋아요도 줄어들었다. 반응이 없는 글을 쓰는  허공에 외치는 것처럼 무용했다.


문득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기억이 떠올랐다. 빙상 여제 이상화 씨가 슬럼프에 빠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의 고민을 듣고 조언해 주는 내용이었다. 선수는 늦은 나이에 스케이팅에 입문했지만 대회 신기록을 세우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럴수록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점점 커졌는데, 훈련량은 외려 줄어들었다.  정도만 하면   알았단다.


그녀는 선수의 예전 영상을 보고 대번에  탄다고 말했다. 잠재력은 충분하다는 말이었다.  선수는 토끼처럼 앞니를 수줍게 들어낸  반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잘할  있다는 주문을 걸고 나태해지지 말라고 강하게 주문했다. 슬럼프 탈출 비결은 심플했다. 결국 자기 자신을 믿고 앞으로 지루하게 나아가는 거였.


슬럼프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과하면 독이 되어 나타난다. 나도 그랬다. 마음가짐부터 라졌다. 글을  생각에 얼굴에 볼웃음을 짓던 일은 온데간데없고, 글을  생각만 하면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남의 글을 지나치게 신경 쓰느라 나만의 장점도 잃어버렸다.  글은 엿가락처럼 늘어졌고 논문처럼 어려워졌다. 글을 쓰는 주기도 길어졌다. 초기에는 거의 매일같이 썼는데 사흘, 나흘로 간격이 벌어지더니 나중에는 닷새가 지나도록  글자도 쓰지  날도 있었다.


글이  써진 날들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길을 잃고 헤맬 때에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멀리   있다. 짧게 쓰고, 장면을 보여주고,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이 ‘로또와 산책 썼던 첫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마존의 데이 원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60번째 똥을 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