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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 May 07. 2019

글_04

두 번째 만남

“네가 보라색을 좋아하는 게 생각이 나서.” 영수가 손에 든 천일홍 다발을 나에게 건네며 다정하게 얘기했다. 처음 받아본 천일홍은 꽃송이가 자그마했고 진한 보라색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고마워. 나는 준비 못 했는데 어떡하지? 대신 내가 맛있는 음식 대접할게.” 우리 동네에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데려가는 라자냐를 판매하는 식당이 있다. 작은 공간에 셰프 혼자 운영하는 곳이라 기다림도 감수해야 하는 곳이지만 동그란 플레이트에 나만을 위한 따뜻하고 진한 풍미의 라자냐와 새콤하고 아삭한 피클, 신선한 샐러드와 달콤한 후식까지 잘 정돈되어 나올 때 지친 일상과 스트레스가 풀리고 그 한 끼를 통해 얻는 행복감을 좋아한다.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매장 내에 하나밖에 없어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바 자리에 나란히 앉아 셰프의 작업을 보며 식사를 해야 하는 곳임에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그 가게로 데리고 간다. “여기 정말 맛있다!” 영수가 그릇에서 따뜻한 라자냐를 한 숟가락 크게 뜨며 감탄했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식혀서 먹어.” 나도 곁들여 나오는 바삭한 빵을 한입 베어 물며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나누고 상대방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점점 더 친밀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셰프는 라자냐를 오븐에 넣고, 빵을 썰며 계속해서 다음 사람의 음식을 준비해 나갔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도 나란히 앉아야 하는, 바 테이블에 앉아있었기에 조용히 서로에게만 들리도록 소리를 낮추어 대화와 식사를 이어나갔다.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니 후식은 이쪽으로.” 그와 나는 여느 시작하는 연인들처럼 약간의 어색함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산책로를 걸었다.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영수와 나는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가 이내 다시 조금 떨어져 걸었다. 탄탄한 체격의 그는 깔끔한 셔츠를 입고 있어서 살짝 닿는 셔츠의 촉감과 그 어깨의 다부짐은 어쩐지 내게 편안함을 주었다. 우리는 고개를 돌려 눈을 보고 이야기하다가 개천이라기엔 크고 강이라기엔 작은 내의 건너편에 주인과 산책 나온 강아지를 바라보다가 냇가에 피어난 꽃을 보기도 했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카페로 걸었다. 지난 사랑에서 내게 남겨진 것은 ‘앞으로 다시는 연애 따위는 하지 말자.’ 였었다. 그의 손에 들린 천일홍의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이라던데 지금 이렇게 내 앞에서 다정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니 다시 사랑에 용기가 생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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