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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글로제이 Jul 31. 2018

에콰줌마의 행복찾기

과수원도 식후경 (1)

 지난 주말.  짝꿍의 외삼촌이 땀 흘려 가꾸신 과수원에 다녀왔습니다. 처음엔 주말 농장으로 시작했는데, 은퇴 이후에는 거의 매일 나가서 과수원을 가꾸시는 게 하루의 주 일과라고.


"제이미 왔으니 파티 한번 해줘야지. 싱싱한 게 사다가 다 같이 모여서 파티하자. 너희 부부 놀러 오면 주려고 아보카도랑 레몬 나무 하나씩 남겨놨으니 익은 과일은 다 따가렴."


전 사실 과일 킬러거든요. 한국에서도 항상 과일은 집에 두고 살았고, 심지어 주식이 과일이라면서 약 2달 정도 비건(Vegan: 채식주의의 가장 엄격한 단계로 모든 육류, 어류, 달걀, 유제품을 금함) 생활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물론 사회생활이 아주 힘들어지고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금세 포기했지만요. 이 얘기는 담에 좀 자세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과일을 좋아하는 제게 과수원 체험에 원하는 만큼 과일을 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어찌나 기대됐는지 모릅니다. 평소에도 항상 8시는 돼야 일어나는 제가 7시도 안돼서 눈을 떠서 짝꿍을 놀랬켰습니다. 얼굴이 탈지도 모르니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또 중간에 바를 수 있도록 팩트도 준비합니다. 과일을 담을 큰 쇼핑백과 한국에서 사 온 얼굴이 다 가려지는 챙이 큰 모자도 준비합니다. 



온 가족을 태워서 과수원으로 출발합니다. 한 시간 거리지만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서 짝꿍이 꼭 먹어봐야 한다고 당부한 유카 빵 (Pan de yuca: 유카를 주재료로 한 빵)과 요거트도 하나씩 사서 입에 물었습니다. 키토는 해발 2800미터의 고도에 형성된 도시 특성상 도시 중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온통 산등성이 투성이 입니다. 그래서 잠깐의 드라이브에도 눈 구경거리가 많죠. 저는 특히나 하늘 보기를 좋아합니다. 한국에서는 왜 그리도 바쁘게 살았는지 잠깐 서서 하늘을 바라 볼 여유도 없이 살았거든요. 일분일초를 바쁘게 살아서 그랬다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행복한 삶을 살겠노라고 굳게 다짐하고 에콰도르에 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매일같이 바라보는 하늘이 꼭 저를 보라고 그려놓은 선물 같습니다. 매일매일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저의 중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과수원 가는 길의 하늘


산과 하늘과 나무들로 한참 눈이 호강할 때 즈음 고속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마을로 들어섭니다. 이런 곳에 과수원이 있을까 싶은 그런 동네입니다. 마을 중심에 있는 예배당을 지나 비포장 도로에 들어섭니다. 제가 얘기했었나요? 키토는 도시 중심부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동네마다 비포장(?) 느낌의 미(완성) 포장도로가 많습니다.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곳곳에 팟홀(pothole)도 많습니다. 그런 길을 덜컹거리며 열심히 달렸습니다. 키토를 벗어나니 확실히 온도차가 있습니다. 차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건조한 흙먼지가 흩날립니다. 무슨 서부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말입니다. 어느덧 비포장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산으로 올라가는 것 같은데, 과수원이 산에 있나? 싶더군요. 도착했답니다. 양 옆으로 나란히 선 담벼락과 내 키만 한 선인장들만 보이는데 도착했답니다. 그런데 그 담벼락 사이에 나 있는 대문을 통해 들어가니 다른 세상이 펼쳐 있습니다. 비밀의 정원을 발견한 주인공의 마음이 이랬을까요. 담을 하나로 흙먼지 흩날리는 골목과 녹색 가득한 세상이 나뉘어 있습니다. 외삼촌이 처음 땅을 사셨을 때는 아무것도 없이 나무만 있었는데 혼자서 벽돌 하나하나 쌓아가며 과수원을 둘러싼 담과 과수원 안에 있는 작은 집까지 이어진 길을 손수 만드셨다고 합니다. 매일 같이 나무 한그루 벽돌 하나 손수 쌓으시며 정성 들이셨을 그분의 수고를 생각하니 아름답다 못해 숭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은 집으로 가는 길에는 빨갛고 큰 꽃이 피어 있어 자연이 만든 contrasting color의 조화를 뽐냅니다. 심플하지만 깊이가 있는 자연의 예술입니다. 도착하니 벌써 이모님과 사촌들이 와서 음식을 장만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들통에 에콰도르의 통통한 게들이 담겨 펄펄 끓고 있고 옆에서는 에콰도르에서 많이 먹는 토스타도(tostado: 옥수수 볶음)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이 뻥튀기나 팝콘과는 다르게 말린 옥수수를 기름에 튀겨서 먹는 이 음식은 에콰도를 로컬 식당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그냥 집어 먹기도 하고 수프에도 넣어 먹기도 하지요. 소금간이 되어 있어서 입이 심심할 때 간식으로 그만입니다. 저도 짝꿍도 손도 씻기 전에 한 줌씩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아… 짭짤하고 고소하고 바삭한 이 맛. 에콰도르식 매운 소스 아히(Aji)랑 같이 섞어서 먹으면 매운 걸 좋아하는 저와 짝꿍에게 딱입니다. 




제가 가리는 음식이 없이 음식을 다 잘 먹긴 하지만 에콰도르 음식 역시 제게 잘 맞습니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한국 식단에 비해 음식 간이 세다는 점이죠. 지금은 대부분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어서 괜찮지만 처음 에콰도르에 놀러 왔을 때는 음식이 너무 짜서 반 이상을 남긴 적도 많았습니다. 에콰도르의 특징 중 하나는 자국에서 생산되는 식료품들은 가격이 아주 싼 반면에 수입에 의존하는 공산품들은 물가에 비해 비쌉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저 임금은 한국의 1/4 수준인데 공산품 가겪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비싼 것도 있으니 로컬 주민들에게는 더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요. 그래도 과일은 한국의 1/5도 안 되는 가격이니 과일 킬러인 저에겐 딱 좋습니다 아…. 자꾸만 얘기가 산으로 가네요. 이 속도면 오늘도 과수원 체험기를 못 끝낼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다음 장에서 끝내야 겠네요 ;)

토스타도 볶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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