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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든소년 Oct 26. 2024

2-3. 정신적 건강

마음챙김, 내면소통, 그리고 수용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전 세계에서 1억 부 넘게 팔린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지구인이 아니라 사이어인이라는 전투종족으로 외계인이라는 설정이다. 사이어인의 특징은 전투종족답게 흉폭하고, 전투를 잘할 수 있는 젊음을 오래 유지해서 나이를 먹어도 겉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가 살아나면 힘이 엄청나게 상승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손오공을 비롯한 여러 사이어인들은 이 특징을 활용해서 끊임없이 강해진다. (심지어, 사이어인의 피를 가지고 있는 악당마저도 이 특징 덕분에 힘을 크게 키워서 주인공 일행이 큰 위기에 닥치게 된다) 그런데, 이 특징만큼은 비단 사이어인의 특징이 아니다. 이번 글의 인용구인 니체가 남긴 유명한 문장처럼 죽지 않는 한, 고통은 개인을 성장시킨다. 나 역시 그랬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라는 의문이 드는 일들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그 덕분에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서문에서 고백한 것처럼 결혼 초기에도 그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고 주저앉아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일들은 나를 해코지하지 못했다. 나에게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과정을 거치며 예전에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고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나를 성장시킨 것은 과거에 나를 힘들게 했던 일들이었다. 오늘은 정신적 건강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우리의 뇌는 외부에서 자극이 들어오면 그에 맞는 반응을 하도록 짜여졌다. 공이 몸으로 날아오면 피하고, 몸이 따가운 것에 찔리면 움찔하며, 길을 가다가 멧돼지를 만나면 몸이 쭈뼛하면서 긴장하게 된다. 이때, 우리 몸에서는 투쟁-도피 반응이 일어난다. 이 자리에서 맞서 싸워야 할지, 아니면 지금 당장 도망가야 하는지를 뇌는 빠르게 파악한다. 조금 더 쉬운 표현은 스트레스라고 부른다. 고대 파충류의 뇌 영역인 번연계는 스트레스에 제일 먼저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고차원적 추론을 담당하는 전두엽 피질이 대응하기도 전에 말이다. 이런 반응은 감정적 반응성이라고 하며, 지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진화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현대 문명 이전의 인류는 번연계가 작동하는 경우가 제한적이었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학교를 다닐 때는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우리의 말초신경까지 건드리는 이런 일들은 항상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피드백이라는 포장지를 씌워서 날카롭게 비수를 찌르는 듯한 말투가 쉴 새 없이 날아든다. “이 일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이 해도 너보다는 잘할 거다.” 혹은 이런 것도 모르냐며 한심한 눈빛과 깊은 한숨을 듣기도 한다. 차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 갑자기 내 앞으로 끼어드는 차로 인해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도 있다. 수개월 동안 열심히 진행하던 프로젝트에서 굉장히 사소한 실수 때문에 모든 동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마음챙김은 우리가 반응이 아닌 대응을 하도록 돕는다. 마음챙김은 단순한 명상이 아니라 외부에서 자극이 들어올 때 번연계가 반응해서 즉시 행동하는 것을 멈추고 전두엽 피질이 상황을 파악해서 대응하도록 우리 뇌를 프로그램하는 것이다. 즉, 마음챙김은 멈춤 버튼과 상황 파악이라는 두 가지 도구를 이용해서 우리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막고 대응할 수 있는 상태를 준비한다. 앞서 여러 번 소개한 적 있는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인 빅터 프랭클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자극과 대응 사이에는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에 우리의 대응을 선택할 힘이 있다. 그 대응에 우리의 성장과 자유가 달려 있다.” 그다음 상황을 파악하면서 지금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대응한다. 마음챙김은 마치 이 일의 당사자가 아닌 목격자인 것처럼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은 이때야 비로소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는 대응을 갖추게 된다. 이것이 마음챙김의 핵심으로서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다.


 변증법적 행동치료의 창시자인 마샤 리네한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삶에서 수용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리네한 교수가 수용에 관해 들려준 일화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조금 각색해 보았다.


한 남자가 자신의 집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며 정원처럼 가꾸겠다는 결심을 했다. 여러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고, 전문 서적을 탐구하며 식물에 대한 지식을 쌓아갔고 직접 키워 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신이 심지도 않은 민들레가 자랐다. 처음에는 그저 뽑으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곧바로 뽑아 버렸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분명 제거했다고 생각한 민들레가 또 피어 있는 게 아니겠는가? 남자는 민들레가 자라나지 못하도록 강력한 제초제를 사용해서 민들레를 제거했다. 이제 안심하고 정원을 가꿔나갈 수 있었다. 1년이 지난 시점에 무심코 정원을 보니 다시 또 민들레가 자리를 잡고 자라나고 있었다. 분명히 작년에 뽑아버렸고 제초제까지 사용했음에도 민들레는 자라나고 있었다. 남자는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며 민들레를 제거해 나갔다. 민들레를 없애달라며 윗집과 아랫집에게 제초제를 선물하기도 하였다. 이제는 민들레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난 어느 날, 남자는 자신의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민들레를 또다시 발견했다. 자신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국가기관인 농림수산식품부에 민들레를 정원에서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직접 질의를 신청하고 며칠 후, 정식으로 답변이 왔다. 답변의 내용은 이러했다. “귀하는 민들레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보셔야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형태의 민들레를 접한다. 모양만 다를 뿐, 민들레는 내가 꿈꾸는 정원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려 든다. 애석하게도 민들레는 제거할 수 없다. 제아무리 뽑고, 제초제를 쓰고, 온마을의 협조를 구하더라도, 민들레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의 정원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피어날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철저한 수용이다. 리네한 교수는 수용이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인정하는 것이라면 철저한 수용은 머리와 가슴과 몸이 온 힘을 다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 철저한 수용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경험한다는 것은 단순히 아는 것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 일을 내가 직접 겪는 것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베란다 정원에 민들레가 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수용이다. 그 민들레를 정원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다른 식물처럼 키우는 것은 철저한 수용이다. 철저한 수용을 위해서는 앞서 설명한 마음챙김의 자세가 필요하다. 위기라고 판단되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즉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상황을 살펴본 다음 제3자의 시각에서 대응한다. 그렇게 철저한 수용의 자세로 나아가는 것이다.


 정규 교육과정은 체육 과목을 통해 학생들의 신체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배분하고 있지만, 정신 건강은 아직까지 학교나 군대에서 신체 건강만큼 다뤄지지 않고 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투지만을 강조하는 문화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이미 구시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군은 병과를 가릴 것 없이 극한의 상황을 겪게 되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강한 정신력을 기르기 위한 활동을 체계적으로 펼치고 있다. 놀랍게도 그 중심에는 반응 대신 대응을 하는 마음챙김이 있고 철저한 수용을 추구한다. 실제로 전투경험이 많은 군인들의 65%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을 하지 못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강인함의 힘>의 저자인 스티브 매그니스 작가에 따르면, 인터뷰를 한 96명 중 94명이 ’주위가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뿌옇게 보인 적이 있다‘고 한다. 포탄이 떨어지고 동료가 부상을 당하는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로 주위 시선이 뿌옇게 보이는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일상도 전쟁터에 가깝다. 오늘날의 기업 활동은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전쟁은 국경도, 휴전도, 인권도 없이 전 세계 곳곳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치열한 전투 한복판처럼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외부 자극은 우리 몸과 마음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한다. 여기에 낙심하거나 상심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마음챙김과 철저한 수용을 통해 우리의 마음 근력을 길러서 강한 정신력을 단련해야 한다. 그렇게 한 발자국을 나아갈 때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욱 성장시킨다는 니체의 말을 수용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건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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