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두 사람이 하는 대화가 안 들려.”
비가 세차게 내리던 저녁,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아내가 갑자기 말했다. 셋이서 함께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내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고, 나와 친구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에 계속 일 생각이 떠올라서 대화가 잘 안 들려. 회사에서도 회의 중에 그런 일이 있는데, 지금도 그래.”
그제서야 몇 주 전 아내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회의 중에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때 나는 단순히 새로운 환경에 어려운 IT 용어가 많아서 그런 거라고 여겼다. 관련 지식을 쌓으라며 책을 추천해주었던 내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은 위로가 아닌, 아내의 불안을 더하는 조언에 불과했다. 아내가 느꼈을 불안과 두려움은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아내는 심리 상담과 정신과 진료를 통해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대출, 자녀, 커리어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한 휴식이 필요했다. 아내는 병가를, 나는 가족돌봄휴직을 신청해, 쉴 새 없이 달려온 우리 부부의 삶에 작은 쉼표를 찍게 되었다.
하지만 휴식은 곧바로 찾아오지 않았다. 직장 생활 10년, 아니 학창 시절부터 약 25년을 쉼 없이 달려왔던 우리는 온전히 쉬는 법을 잊고 있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휴식도 익숙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법이었다. 우리는 매일 작은 순간에서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먹는 음식의 맛을 음미하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모양에 감탄하며, 저녁마다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쉬는 것이 멈추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고요함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바쁘게 달린다. 마치 쉬지 않고 달리는 고속도로를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달리다 보면, 가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잊게 된다. 그럴 때는 잠시 휴게소에 들러보자. 화장실을 들르기 위해, 배를 채우기 위해, 혹은 그저 잠시 쉬어가기 위해 말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힘을 내어 나아가면 된다.
우리 부부에게는 약 2달 간 쉼표의 시간이 주어졌다. 2달 뒤에 아내의 증상이 호전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우리는 이 시간을 큰 축복으로 여기고 있다. 이 글을 읽을 사람 중에 우리 부부처럼 휴게소에 들리고 있거나, 들려야 하는 청년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잠시 멈춰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