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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23. 2019

구멍가게

구멍가게 안에는 작지만 커다란 행복이 스며들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는 미니 슈퍼마켓이 있었다. 사실 슈퍼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 규모가 작아서 구멍가게라고 부르면 딱 맞았다. 그 가게는 기본적인 청과물이나 인기 과자 몇 종류, 그리고 주민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들을 갖다 놓았다. 그 가게가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대신 유명 편의점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거대기업이 골목까지 잠식한 결과다. 대형마트는 일요 의무 휴업으로 골목상권을 보호한다고는 하지만.


 내 어린 시절엔 모든 가게가 작았다. 고만고만한 가게에 고만고만한 물건들을 놓고 팔았다. 반원형 창문만 내놓고 물건과 돈을 주고받는 곳도 있었다. 담배나 껌, 복권 같은 걸 파는 데였다. 마치 쥐구멍처럼 생긴 작은 구멍 밑으로 돈과 물건이 오고 갔던 가게. 그런 가게에 이름 붙인 것이 구멍가게가 아닌가 한다. 구멍만 뚫어 놓고 물건을 파는 가게, 구멍만큼이나 규모가 작은 가게.


 구멍가게라는 이름이 나에겐 특별한가 보다. 지금도 ‘구멍가게’라고 발음하면 목구멍이 속부터 간질간질해지는 걸 보면. 구멍가게는 어린 내게 유토피아였다. 먹거리나 놀 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그곳엔 많은 것들이 있었다. 가게 이름도 딱히 없었다. 이름을 짓지 않아도 고유한 그 동네만의 가게였으니까.

 

 추억의 사진기를 돌려볼까. 구멍가게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깔사탕 상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 투명한 상자에는 칸이 여러 개 나누어져 있고, 알록달록 눈깔사탕이 들어있다. 흰색 줄이 회오리처럼 휘감겨 있는 사탕, 굵은 설탕가루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사탕, 속이 투명하게 보이는 새빨간 사탕.


 그 옆을 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들이 늘어서 있다. 라면땅(라면을 잘게 잘라 튀긴  과자), 자야(라면땅과 비슷한데 조금 더 가늘고 더 고소한 프리미엄급 과자), 그리고 옆에는 아폴로(가느다란 빨대 안에 오렌지 맛이 나는 설탕 젤리가 들어있어서 이빨로 끌어올려 먹는 간식), 속에 구멍이 뚫려있는 약처럼 생긴 납작한 사탕 등.


 오랜만에 바깥을 둘러볼까. 가게 앞에는 아이스케키 통이 있다. 둥근 통의 손잡이를 잡고 열면 하얀 냉기가 올라온다. 그 안에는 둥글고 긴 아이스케키가 보인다. 그 옆에는 삼각형 모양의 아이스케키도 보인다. 모두 흐린 밤색이다. 맛을 보면 달고 팥 맛이 났다. 겨울엔 가게 안에 난로가 생겼다. 연탄난로인데 그 위에는 항상 커다란 양은 주전자가 올려져 있었다. 그 안에는 보리차가 끓고 있었다. 지나가는 어른들은 그 보리차를 공짜로 마시고 갔다.


 세상에서 가장 신기하고 맛있는 것만 모아 놓은 구멍가게. 아이들에게 구멍가게는 행복우물이었다. 아무리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행복을 주었으니까.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아이가 구멍가게 아저씨 딸이었다.


 어쩌다 10원짜리 동전이 생길 때마다 아이들은 부리나케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우리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는 친절하셨다. 내가 가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엽다고 해주셨고, 외상도 곧잘 해 주셨다. 엄마가 안 계신데 과자는 먹고 싶어서 손가락만 빨면서 가게 문고리를 잡고 있어 본 적이 있다. 그러면 아저씨는 들어오라고 해서 먹고 싶은 걸 고르게 하셨다. 나는 몇 번쯤 쭈뼛거리다가 덥석 좋아하는 과자를 집었다. 아저씨는 그때 인심 좋은 말을 덧붙이셨다. "뭐 어떠냐? 하루 이틀 장사한 것도 아니고 네 엄마 아빠 다 아는걸 뭐."


 아저씨는 머리가 좋은 것 같았다. 그 많은 과자 가격을 어떻게 다 외우는지 말이다. 또 외상 장부 기록하는 걸 못 봤다. 엄마가 콩나물 사러 올 때 기억나면 그때 말씀하시는 건지. 내 짐작으로는 까먹고 안 받은 돈도 많으실 듯하다.

 

 신용카드를 대신하는 게 그때에도 있었다. 외상거래였다. 외상거래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집에서 많이 쓴 제도였다. 월급날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생활비를 다 쓴 집들은 가게에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반찬거리를 가져갔다. 동네가 작으니 남의 집 살림살이들을 훤히 꿰고 있어서 서로 믿었던 것이리라. 당장 현금이 없어도 동네 신용만으로 물건을 주었으니 나름대로 신용거래였다.


 아저씨는 아저씨만의 신용등급도 매기셨다. 외상을 고질적으로 안 갚은 사람은 신용불량자로 등재해 물건을 내주지 않았으니까. 외상으로 가져갈 때 요즘으로 치면 카드에 서명하는 것과 비슷한 행동도 있었다. '허공' 사인이다. 검 지 손가락을 허공에다 대고 사선으로 쓰윽하고 긋는 것이다. 이 말과 함께. “아저씨, 이거 외상 달아주세요.”


 이제는 그 신용을 플라스틱(신용카드)이 대신해 주고 있다. 내 이름을 굳이 알릴 필요도 없고, 구질구질하게 내 월급날이 어떻고 말할 필요도 없다. 기계에 넣고 쓱 긁기만 하면 되니까. 고만고만한 구멍가게들이 사라지고 나니 아쉬운 게 있다. 물건 하나 사면서 서로 쌓던 행복 부스러기들이다. 어릴 적 구멍가게에서 나누었던 작은 대화, 작은 몸짓, 눈빛, 이런 것들이 아직도 가슴속 따뜻한 공간에 저장되어 있다.    

  

 행복은 이렇듯 작은 점들이 모이고 모여 선으로 연결되는 순간이 아닐까. 돈이 많다거나 크게 성공을 해서가 아니라. 그건 찰나일 뿐. 행복은 구멍만큼 작은 틈으로 서서히 스며든다.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구멍가게 추억을 화폭에 담는 화가가 있다. 펜화로 유명한 이미경 작가다. 그는 다른 화가들이 붓으로 그리는 것과 달리 펜으로 몇 천 번, 몇 만 번 선을 그어 그림을 완성해 낸다. 그의 그림에 대해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교수는 말한다.      

“이미경의 '구멍가게가 있는 풍경'은 온통 선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이다. 그 선은 색과 분리될 수 없는 선이다. 칼로 찌르듯 선을 새기고 집요하게 더듬어가며 하나씩 하나씩 완성해가는 일이다. 그것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 사물 피부에 들러붙어 이들을 탐닉하는 일이면서 그것은 추억과도 조응한다. (2018년 전시회 도록)     


 인생 전체로 볼 때 매 순간이 전체고 전체가 매 순간인 것이다. 한 순간도 소중히 해야 하는 이유다. 어쩌면 행복이란 작은 부스러기들을 그러모아 빚어내는 반죽덩어리 같다. 내 어릴 적 구멍가게에는 그 '행복 부스러기'들이 모여들었다.


 그 공간이 눈물겹도록 그리울 때가 있다. 대학만 가면, 취직만 하면, 결혼만 하면, 아이만 크면, 했던 일들이 막상 이루고 나면 허탈감이 밀려올 때다. 오히려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살아내던 순간들, 그때 흘린 시원한 땀방울 속에 행복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나누던 작은 일상이 행복이 아닐까.


 거리두기가 의무화되니 더 절실해진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낀다. 나 혼자 이루어낼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또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행복할까? 행복이란 처음부터 거창하지 않은 건지도. 사람과 사람 사이, 구멍만큼 작은 곳으로 조금씩 스며드는 햇살 같은 것이었다. 행복해지는 데에 큰 것이 필요하지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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