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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21. 2019

가루 주스

오렌지 분말주스에서는 만만한 사랑의 맛이 났다.

 내가 태어난 60년대 우리나라는 궁핍하기 짝이 없었다. 살던 지역이 서울이었음에도 동네마다 거지가 있었을 정도다. 주로 육교 밑이나 버스 안에서 동냥을 했다. 하도 거지가 많다 보니 방판(방문 판매) 거지들이 있어서 가정집을 정기적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나이가 많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는 멀쩡하게 생긴 젊은이가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시고 아이들만 마당에 나와 있었는데 열려있는 대문을 그냥 밀고 들어온 것이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보다 못해 당시 학교 2학년생이던 언니가 대담하게도 거지에게 대화를 시도했다.(시대를 초월해서 ’중 2‘는 세상 무서운 게 없다.)


 처음엔 간단한 인사말로 시작해서 인생살이 이야기로 넘어갔다. 마치 자신에게 인생 상담받으러 온 고객 대하듯 하는 말투로. 그러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들어갔다. 아저씨는 아직 나이도 젊고 신체도 건강한데 왜 동냥을 하느냐고.


 그러자 처음엔 밥을 주는 줄 알고 대화에 응하던 거지는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냐며, 버럭 화를 내면서 나가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거지는 그저 밥을 먹고 싶은 '순수한 거지 청년'이었다. 그걸 이상하게 바라본 우리가 잘못이었는지도. 배가 고픈데 밥이 없다. 그래서 아무 데나 들어가서 밥을 달라고 한 것일 뿐.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젊은 남자가 남의 집안에 함부로 들어오다니. 예전엔 낮에 대문을 걸어 잠그지 않는 집이 많았다. 농경시대의 습성이 남아있는 것인지. 사립문 같은 걸로 막아놓을 뿐 시골집은 대문이 아예 없는 집도 많았다. 행인이 낮에 지나 가나다 불쑥 대문을 밀고 들어오는 경우가 흔했다.


 이처럼 당시엔 단지 먹을 걸 동냥하는 일이 흔했다. 정상인도 동냥을 하던 시대라 환자들은 더욱 먹고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시각 장애인이나 한센병 환자들이 음식 동냥을 많이 하러 다녔다. 당시엔 한센병 환자를 '문둥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에게 문둥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울면 문둥이가 잡아간다."라는 말만 하면 울음을 뚝 그쳤다. 문둥이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문둥병 환자가 어린아이의 생간을 먹으면 낳는다는 무시무시한 괴담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둥병 환자가 나타났다는 말이 돌면 뛰놀던 아이들이 얼른 집안으로 숨었다.


 아이들이 문둥병 환자를 놀리면, 그 아이 얼굴에 침을 뱉고 간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그 침이 얼굴에 묻으면 문둥병에 걸린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문둥병 환자들은 이래저래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평범한 서민들도 먹 거리가 빈약하긴 마찬가지였다. 고기반찬은 명절 때나 가능했으니까. 설탕도 귀한 음식이었다. 커피가 전 국민 기호식품이 되기 전이었고,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차를 마시는 건 사치였다. 지금의 커피를 대신하는 차가 있긴 했다. 손님이 오면 따뜻한 물을 대접에 하나 가득 담아 설탕 한 숟가락을 녹여서 대접하곤 했다. 100% 순수한 ‘설탕 차’인 셈이다. 설탕도 아까워 사카린을 타서 마시기도 했다. 어른들은 그 차를 ‘단물’이라고 불렀는데 체하거나 속이 더부룩할 때 마시면 좋다고 했다.


 겨우 서 너 살 적 일인데 나는 아직도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 워낙 싫어했기 때문이다. 설탕물을 마시면 머리가 띵하게 아픈 것 같았다. 기분이 나쁜 단맛이었다.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손님이 오면 내 얼굴을 손님 코 밑에 바짝 들이대고는, “설탕물 타다 줄까?”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더 지나자 사람들이 설탕물을 더 이상 마시지 않았다. 대신 여름마다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이 있었다. 주황색 가루를 찬물에 타서 대접하는 것이다. 그 가루 봉지엔 오렌지 단면이 그려져 있었다.


 그 주황색 물은 투명 유리잔에 내곤 했는데, 그 맛은 요즘도 나오는 ‘오렌지 맛 환타’와 비슷했다. 아이들은 물에 타 마시는 것보다 가루로 먹는 걸 더 좋아했다. 물에 타려면 두 세 숟가락을 넣어야 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아까웠다. 가루 그대로 핥아먹는 게 더 경제적이라 느껴서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아껴가면서 혓바닥으로 날름날름 핥아먹었다.


 이때 혀가 새빨개져서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거리곤 했다. 이것만 있으면 어린 내게는 말 그대로 ‘행복 스위치’가 켜지는 셈이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이 마법가루만 있으면 감쪽같이 행복해지곤 했으니까. 그 뒤로 나온 ‘100% 오렌지 주스’라고 쓰여 있는 음료는 시큼 쌉쌀했다. 그 맛은 마치 “나는 진짜라서 그래요. 가짜 주스는 달기만 하죠. 그런데 내가 진짜예요. 절대로 속지 마세요.”라고 거만하게 말하는듯했다.


 진짜임을 증명하듯, 오렌지 알갱이까지 둥둥 떠다니는 100% 주스. 이 주스가 처음엔 낯설었다. 마치 본처를 몰아내고 안방을 꿰차고 들어앉은 애첩처럼. 별로 달지도 않은 데다 건더기까지 있는 게 무슨 주스냐 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건강한 먹을거리에 관심이 높아진다. 무심히 먹어오던 음식들에 대한 안전성 논쟁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MSG에 대한 말은 아무리 들어도 헷갈린다. 두뇌에 좋다고 해서 한 수저씩 떠먹던 시절도 있었다던데. 어느 시절엔 몸에 안 좋다고 절대 넣지 말라고 하고, 또 요즘은 적당량은 괜찮단다. 이럴 때마다 매스컴을 불신하게 된다. 어깃장을 놓는 것이다. ‘인공색소면 어때서. 대신 식용색소라잖아. 나름대로 개성 있는 맛이 있으니 존중해줘야지, 안 그래? 설탕 덩어리면 좀 어때? 어릴 때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데.’ 하면서 가루 주스를 옹호하는 나를 본다.


 인생의 반을 훌쩍 넘게 살아온 지금, 내 혀는 단것보다 쓴 것에 호응한다. 단것이 혀에 닿으면 뇌에서 '삐요삐요 주인님. 몸에 나쁜 거예요. 지금 당뇨 직전이라잖아요. 되도록 먹지 마세요." 하고 경고음을 울린다. 그러면 못내 아쉬워하면서 슬쩍 내려놓게 된다. 그럼에도 내 혀에는 특별석이 마련되어 있다.


 치 외 법권 적이고 안하무인격이며, 화학기호나 건강 상식 따위는 집어치우라며, 그의 등장과 동시에 빨간 주단을 깔아주게 되는 것. 그것은 가짜 오렌지 '가루 주스'다.


 맞다. 그 ‘치 외 법 권적인 주스’엔 오렌지가 한 알갱이도 안 들어있다. 비타민 성분은커녕 몸에 해로운 색소와 사카린 덩어리다. 하지만 ‘진짜' 가짜가 지닌 '강렬한 포스'는 나를 매혹하고도 남는다. 누가 뭐래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데. 세상에서 제일 못 생겼어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내 눈에 콩깍지 애인’ 같은데 말이다.


 가루 주스에는 진짜 주스가 줄 수 없는 게 하나 있었다. 한 때 ‘행복을 주던 존재’라는 점이다. 가루 주스는 어린아이들에게 행복을 주었다. 그 가루는 아직 혀가 설익은 아이들에겐 딱 알맞은 당도를 가졌다. 천지분간 못하는 아이들에게 한참이나 만만한 맛이었다. 또 애처로울 정도로 정직한 맛이었다. 거만을 떨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었다.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넘치도록. 그래서 아이들이 행복해했다. 나는 아직도 가루 주스가  그립다. 버튼만 누르면 즉시 켜지는 주황색 행복 스위치가. 그건 아마도 만만하고 넘치는 사랑이 그리운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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