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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21. 2019

구슬치기

어린 시절 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끼워주지 않던 놀이가 있다

 재능 나눔에 대한 수업을 하였다. 누구나 남에게 줄 것이 있고, 돈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다는 말을 곁들였다. 시간을 준 후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을 나와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자 아이들은 다양한 재능을 펼쳐 보였다. 3년간 배워온 캘리 그래피를 알려주는 학생, 인기 만화 캐릭터 눈을 잘 그리는 학생 등등. 앞에 나와서 직접 윗몸일으키기를 50번이나 한 학생까지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기의 신’ 남학생이 신선했다. 아이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앞에 나온 그 학생은 공기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특히 꺾기를 잘해서 금세 50년(공기놀이 점수 환산치)을 훌쩍 넘어섰다. 그대로 계속했다가는 도저히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중단시켰다. 또한 팔 굽혀 펴기를 잘하는 여학생이 나와서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체력이 좋은지 남학생들도 하 기 힘든 팔 굽혀 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요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남녀 구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6학년 남학생들이 복도에 앉아 옹기종기 공기놀이를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그때 남학생들이 하는 말은 여학생들이랑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야. 너 살짝 건드렸어.” “아냐.”  


 피식 웃음이 난다. 내 어린 시절에 볼 수 없던 광경이기 때문. 그때는 남녀 놀이가 달랐다. 여자애들은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남자애들은 딱지치기, 구슬치기 등으로 말이다. 그러려니 했지만. 특별히 남자 놀이 중 탐나는 것이 있었다. 구슬치기였다.


 구슬은 생김부터가 남달랐다. 유리로 만들어져 묵직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고, 동글동글 모양도 예뻤다. 유리구슬 속에는 작은 공기 방울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그 자체로 신비해 보였다. 구슬 안에는 여러 색깔의 줄무늬가 들어 있었는데 색깔이나 무늬가 가지가지였다. 그 무늬가 마치 마법사가 주문을 외울 때 치는 번개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특별한 기구들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과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들 같았다. 마치 CIA 요원 같은 눈빛을 띠고서. 특히 땅바닥에 엎드려 한쪽 눈을 감고 구슬을 겨눌 때가 그랬다. 비밀요원이 적을 표적 사격할 때처럼 번득였다. 이 놀이는 엄지와 중지를 동그랗게 만들어 자기 구슬을 쳐서 상대 구슬을 맞추면 그 구슬을 전리품처럼 가지는 것이다.


 구슬을 많이 딴 아이들은 돈을 받고 아이들에게 팔기도 했다. 원래 산 가격보다 싸게 팔았지만, 아이들 세계에선 재산 가치가 상당했다. 공부 안 하고 구슬치기만 하다가 엄마에게 걸려서 혼이 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땐 숨겨둔 구슬을 엄마가 몽땅 내다 버리는 참사가 일어났다. 피땀 흘려서 벌어놓은 건데.


 우리 동네에 ‘구슬치기 왕’이라 불리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구슬치기에 있어서 백전백승이었다. (이런 아이가 커서는 당구 왕이 되지 않을까) 손끝이 야무지고 집중력이 좋은지 모든 구슬을 흡입했다. 그 아이가 구슬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누런 종이 봉지는 대기업 총수의 방탄 금고였다.


 나에겐 소망이 있었다. 구슬치기 대열에 한번 끼고 싶었던 것. 여자아이들이 하는 소꿉놀이나 인형 놀이, 고무줄놀이는 이 구슬치기에 비하면 시시해 보였다. 소꿉놀이는 지금도 결사반대다. 어차피 커서 지겹도록 집안 살림을 할 텐데, 뭐하러 어릴 적부터 연습해야 하는지. 또 아기 돌보기를 굳이 인형으로 실습할 일이 있는지. 하지만 남자 애들은 여자아이를 절대 끼워주지 않았다. 분명 같은 나이에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도. “여자가 끼면 재수 없어.”라는 말도 했다.


 그래서 한동안 구슬치기를 구경하면서 남자애들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면 남자애들은 무슨 비밀요원 회의하듯 등을 돌리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도 기분 나쁘다. 구슬치기를 할 때의 그 매서운 눈빛과 손가락 튕김을 경험해 보고 싶었는데.


 나중에는 그 호기심이 ‘바둑알 까기’로 옮겨갔다. 바둑 알까기는 구슬치기 규칙과 비슷해서 좋았다. 구슬치기는 남자들의 성역처럼 보였지만, 바둑은 그나마 합법이었다. 여자아이들은 바둑알까기보다는 공기놀이를 좋아했다. 그래서 놀 상대가 없었던 나는 나랑 동갑내기인 남자 사촌과 종종 대결을 벌였다. 우리 집 바로 뒷집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설움 때문에 이 바둑알 까기를 혼자서 열심히 연구했다. 결국 나중엔 꽤 잘하게 되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오목으로 발전했다. 비슷한 느낌이어서인지 구슬치기에서 바둑 알까기, 오목으로 옮겨간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구슬과 바둑알이 무슨 차이였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구슬치기보다는 성차별에 대한 반발이 더 컸던 것 같다. 한때는 ‘구슬치기의 변형’인 포켓볼에 빠졌다. 시대의 흐름을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순간이 있다. 아이들이 주로 하는 놀이문화를 볼 때다.


 점점 남녀의 역할 구분이 사라지는 추세다. 아이들의 놀이문화도 그렇다. 나로선 반가운 일이다. 누가 아는가. 어린 시절 내가 구슬치기를 했다면 우리 동네 ‘구슬 갑부’로 존경받았을지. 구슬치기가 의외의 소질로 연결되었을지도 모른다. 차아람 당구 선수나 박세리 골프 선수처럼. 아니 어쩌면 대단한 기업가로 성공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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