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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21. 2023

프락치의 부치지 못한 편지


 표현하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면 실제로 몸에 병이 생기곤 한다. 회사를 다니며 크고 작은 병을 얻게 된 이유의 8할도 할 말은 많은 데 대놓고 하지 못해서 이지 않을까 싶다.

 이건 사적인 감정의 영역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인생에서 딱 두 번 있었던 정식 고백 모두 짝사랑이었다. 뭐야 이거 나 혼자 좋아하네 마네 하는 계산은 늘 할 겨를이 없었고, 차이더라도 표현하고 차여야 그 달뜬 감정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게 나란 인간이었다.


(팩트든 감정이든 표현해야 사는 불치병 환자로서, 이 세상 단 한 명의 인물만 존경해야 한다면 아마 그건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고도 의적이 된 홍길동일 것이다. 아닌가, 호부호형을 할 수 없었던 그 들끓는 통한이 그를 의적으로 만든 결정적 원동력이었나)


 여하튼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대개 오랜 시간 천착한 대상과 관련되어 있다. 10년이란 세월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회사는 끝끝내 마음을 붙일 수 없는 애증의 대상이었고, 하필 돈이 결부되어 나의 단호박력이 맥을 못 춘 영역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에 대해 할 말이 몹시 많았는데 그러면서도 또 선뜻할 수 없었다.


 긴긴 시간에 걸친 부적응과 비겁함에 대한 고백은 패자의 문장이라 여겨졌고, 어차피 마음을 굳힌 지금 구질구질한 기록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면서도 이걸 내 식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나란 인간은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못 빠져나올 텐데 나 진짜 어쩜 좋지 하는 마음만 계속되었다.

 

 내 의지로 떠나기로 결정할 때, 나는 그 대상에 대한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갖고 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다시 말해 돌아서기 직전까지 쿨하지 못한 것도 너무 나였던 것이다.


 나 지금 떠나, 근데 있잖아, 나 이랬었어.

 어쩌고 저쩌고. 주저리주저리.


대신 답장은 전혀 기대하지 않고, 일단 부치는 순간 그걸로 끝, 그때부턴 뒤도 안 돌아보고 간다. 내 패턴을 너무 잘 아는 나로서는 이번에도 편지를 반드시 부쳐야 끝이 날 것 같은데 여기에 명분까지 찾고 앉았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렇게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하고 답답해하는 지루한 시간들을 보내고 또 보냈다. 명분만 찾아봐라 이런 거 저런 거 다 써주겠어 하며 편지에 쓸 내용들을 정리하던 며칠 전, 드디어 조지 오웰의 책에서 용기를 얻었다. 읽은 지 꽤 된 책인데도 눈이 가고 손이 닿는 곳에 그의 문장을 적어 두었던 것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오늘의 내가 이렇게 써먹을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과거의 내가 형광펜으로 표시까지 해두었다.


1950년대 후반 이전의 일은 송두리째 사라지고 없었다. 참고할 외부 기록이 없으면 자기 삶의 윤곽마저 희미해진다. 아마 일어나지도 않았을 엄청난 사건을 떠올리기도 하고, 사건의 세부 내용은 기억하지만 그 분위기는 재생할 수 없기도 하며, 아무것도 채워 넣을 수 없는 긴 공백기도 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달랐다.

조지 오웰 <조지 오웰 진실에 대하여>


13년 프락치 삶의 윤곽이 희미해지기 전,

 참고할 외부 기록.


 찾았다,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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