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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26. 2023

당신의 회사는 하류입니까

논어에 '군자는 하류에 거하기를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군자가 아닌 그 누군들 하류에 머물기를 좋아하겠냐마는 그 이유가 참 설득력이 있다. 군자가 하류를 꺼리는 건 하류는 천하의 모든 악한 것들이 모여드는 곳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대개 조직의 위계질서하에서 상류라 하면 지위가 있고 권력을 가진 집단일 텐데 그렇다면 그곳엔 천하의 악한 것들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일까? 개인이 가진 지위와 권력이 그가 가진 도덕성 및 인격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대, 현실의 모든 악한 것들은 조직의 상류에 득실 거린다에 내 소박한 전 재산을 걸고 싶은 기분은 왜 드는 걸까?


 다른 조직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나는 이 정도면 양반이다 하는 비교군 자체가 없었기에, 다른 데도 마찬가지란 지인들의 말이 늘 와닿지가 않았다. 내가 다니는 회사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에 살짝 위안을 느꼈을 뿐, 물음표 살인마인 나를 납득시킬 순 없었다. 출근 후부터 퇴근 전까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영향력을 행사하는 저 무리들은 왜 이렇게 하류인 걸까, 그 단서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 헤매다 신문 칼럼에서 흥미로운 견해를 발견했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데스티노 교수는 '자신과 권력 격차가 크게 나는 사람일수록 믿지 말라'라고 했다. 특히 권력자를 선하냐 악하냐라는 기준으로 신뢰할지 말지를 판단하지 말라고 덧붙인다. 신뢰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장단기 이익 균형의 문제기 때문이다.


 데스티노 교수가 언급하는 인간의 두 가지 충동의 하나는 당장의 만족을 얻으려는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장기적 개선을 이루려는 충동이다. 인간은 장기 이익을 훼손하지 않고 눈앞의 단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데,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으로 장기 이익을 지킬 수 있기에 타인의 신뢰를 더 쉽게 배신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주어진 상황에서 비용과 편익의 계산 결과이므로, 권력을 쥐기 전에야 승진을 위한 평판이 중요하지만 임원이 되고 나면 권력으로 지시하고 명령할 수 있기에 평판이 나빠져도 개의치 않는다는 (매일경제 김인수 기자님의) 명쾌한 설명도 덧붙여 있었다.






 즉 권력자는 눈앞의 이익을 탐해도 장기적으로 피해볼 일이 없으니 더더욱 단기 이익에 치중한다. 이들이 평소에 식언과 실언을 일삼고도 후안무치일 수 있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매번 내로남불의 위선을 선보일 수 있는 근원적 이유였다.


 현재의 권력자들이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치더라도, 승진이라는 욕망의 전차를 타고 (적어도 지금은) 평판 관리를 하는 미래의 권력자들 중 권력을 잡는 순간 돌변할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씁쓸하고 슬픈 사실이다. 나야 승진포기자지만, 쾌락 호르몬 도파민을 뿜어댄다는 권력의 맛을 알고 나면 나 또한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겠지.

 

유독 권력자들은 왜 그리도 공감능력이 없을까 그것도 늘 경악스러운 지점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들이 사이코패스라서가 아니라 (물론 의심되는 자들도 있다...) 굳이 아랫것들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할 이유와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남친도 아닌 그들에 대한 나의 기대감은 뭐 이리 진정성 있고 또 한결같았을까.


가져본 적 없어 몰랐다.

권력의 심도 깊은 그 생리를.


 한편 칼럼에서는 권력자의 내로남불과 나쁜 짓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외부견제가 필수라는 방안도 함께 제시되었다. 권력자로 하여금 본인의 위선적 행태가 곧 손해로 이어진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납득시켜 주는 이론들을 신나게 읽다가 이 대목에서 나는 상당히 회의적이 되었다. 솜방망이는커녕 간질거리는 수준의 징계,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에게 N차 가해를 일삼는 구제 절차, 짜고 치는 고스톱보다도 수가 훤히 보이는 감시제도가 내가 본 현실판 신호였기 때문이었다.



상류든 하류든 이제 나는 내 강물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려고 한다. 나의 강 하류가 천하의 악이 모여드는 하류가 되지 않게, 그것만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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