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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21. 2023

조직문화를 빙자한 풍토병


 회사가 표방하는 인재상이 있었던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회사의 인재상을 읽어 보았다. 입사 13년 만에 처음 알았다. 이곳이 이런 인재상을 추구했었구나...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가 실제 그 회사에서 근무하는 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서로가 서로의 이상형이라 결혼을 했다는 뭐 그 정도의 확률인 건가 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자주 챙겨보는 매일경제 트라이씨 기업심리학 칼럼에서 읽었던 흥미로운 내용을 떠올렸다.


문화는 회사가 표방하는 구호나 이념보다 구성원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믿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구성원들은 누가 승진하고, 누가 연봉을 더 받으며 누가 어떤 책임을 지는지를 보면서 문화를 체득한다. 그리고 어떤 문화를 한번 받아들이면 이를 믿고 그 문화에 맞춰 생활한다. 기업문화는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을 바라보는 믿음, 즉 태도와 감정의 문제다. 이러한 인식과 그 기저에 있는 감정은 조직의 모든 제도와 프로세스 그리고 대인관계를 해석하는 필터로 작동하며, 판단과 의사결정 등 행동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조직문화라는 말을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도 여러 워딩들이 넘실거린다.


 내로남불, 복지부동, 관료주의, 무사안일주의, 우물 안 개구리, 조선시대 유교로의 개종 강요, 내가 한 건 입사가 아닌 입대였네 까라면 까 등등.

 

 좋은 것도 하나 두 개쯤은 끼어있어야 극으로 치우쳐진 내 시선이 들통 안 날 텐데 아무리 쥐어짜도 수습이 안 된다. 나는 내가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알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새로운 문화라고 해서 무조건 마음이 열리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특히 이 회사의 조직 문화를 콕 집어 조직 내 기득권의 문화로 좁힌다면, 장담컨대 어디 내놔도 쪽 팔리고 부끄러울 자신이 있다. 조직 시스템 특유의 한계인건지, 유독 그런 문화를 선호하고 퍼트리는데 능한 사람들이 기득권이 된 건지, 아님 둘 다인 건지. 대체 그들이 살던 시대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지 않으면서도 궁금하다.


 물론 사람이 다 똑같진 않으니 때때로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겁 없는 자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던진 돌의 파문은 조직문화의 변화로 번지는 게 아니라, 그 돌을 던진 자가 조용히 사장되는 진부한 결말로 치닫는다. 조심스레 음모론을 제기하자면 조직마다 어떤 비밀 장치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조직을 향해 던진 돌이 어떻게 매번 돌을 던진 자를 정조준해 그를 맞혀 죽이냐 말이다. (실제 꼬장꼬장한 조직에 돌을 던져 보고, 반사되어 맞아도 봤는데 다행히(?) 죽지는 않은 내가 제기하는 음모론이니... 조금은 타당성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켜본 똑 부러진 젊은 세대 직원들은 이치에 맞는 결심을 한다.

(후배 직원의 표현대로) 회사는 어차피 원화채굴장치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 제대로 그 문화에 편승해서 기득권의 후계자가 되든지, 조직문화고 나발이고 일절 무관심한 방관자가 되든지. 이 사이클은 역사가 반복되듯 반복되고 또 누적된다. 추종자들이 다수가 되면 그 찬란한 조직 문화는 문화를 넘어 지켜야 할 룰이 되고, 계승해야 할 전통이 되는 것이다.






애초에 기득권의 후계자가 되기에 글러먹었던 나는 입사 13년 만에 이 조직의 문화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


조직문화를 빙자하여 특정 지역의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인 풍토병.


걸리지 않으려면 해외에 갈 때처럼 회사에 갈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오늘도 칙칙 기피제를 뿌리고 손을 벅벅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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