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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Jun 28. 2023

프락치의 욕망과 현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기업의 변화 속도가 시속 100마일이라면 정부관료조직과 규제기관은 25마일이라고 했다.

기업은 변화가 생존과 직결되어 있고, 속도가 곧 경쟁력이기에 변화의 속도가 빠른 것이 당연하다. 한편 정부관료조직과 규제기관은 각자 고유의 기능이 있으므로 역할에 맞는 속도대로 변화하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문제는 안정(?)에 대한 미련과 본전생각으로 25마일이란 변화 속도에 올라타 있으면서도, 발전과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매번 눈이 돌아가는 나의 이중성에 있다. 실제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몇 년 전부터 줄곧 나의 속도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려왔다. (안과 밖의 속도 격차를 실감하면 실감할수록 이 병세는 더 심해지는데, 차라리 그냥 공부를 접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나에게 그어진 금이란 금은 모조리 밟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건 나의 욕망.
회사 이름 떼고, 명함 떼고, 연봉 떼고 시장에 내 던져졌을 때 처참히 발릴 건 나의 현실.


안과밖의 속도차에 멀미를 느끼는 건 그 차이가 자꾸만 나의 욕망과 현실의 간극을 상기시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결재 올린 서류 족족 어처구니없는 것만 틀리는 한 직원에게 이거 고쳐라 저거 고쳐라 하다가 현타가 밀려왔다.

 이런 틀린 그림 찾기나 하려고 잠을 쪼개가며 공부한 게 아닌데, 자꾸 저차원적인 실수를 지적하는 걸로 내 역할을 몰고 가는 그 직원이 너무 싫어진다.

내가 10년 넘게 갈고닦은 게 회사 안에서나 써먹을 수 있는 잔잔바리 기술이란 걸 매번 일깨워주는 거라면 성공이다.


가슴에 손을 얹는다. 바닥에서 굴러먹은 연차가 반영된 보상이라 하더라도, 잔기술에 대한 대가로 받는 월급은 제법 후하다. 이게 내 능력의 값어치인 줄 착각하지 말지어다. 조직의 톱니바퀴 중 톱니 1로 있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것, 그게 내 현주소란 걸 직시하고 그 톱니 1에 안주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시속 25마일을 환산해 보니 시속 40km쯤 된다.

여러 '보호구역'의 속도와 비슷한 건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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