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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군 Jun 29. 2019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교수님을 알게 된 건 “알쓸신잡2”를 통해서다. 건축가의 등장은 알쓸신잡을 새로운 차원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주었고, 그 과정을 지켜보던 사람 중 하나로서 나도 큰 감흥과 감탄을 여러 번 느끼게 되었다. 때론 아이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해 보이면서도 날카로운 시선과 지식으로 건축과 도시와 자연을 바라보는 교수님의 모습은 꽁꽁 얼어있던 내 삶의 미지의 영역을 깨뜨려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꼭 교수님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다 시즌3가 끝났을 때에야 책을 구매하고, 또 수개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다 읽게 되었다.


 내용은 누구나 교양서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담백하게 쓰였다. 건축학적 지식을 쏟아내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건축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질문들을 던져주고 있다. (제목부터가 질문이다.)

 

 남대문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과 편견을 깨 준다.

“남대문은 재료가 오래된 나무이기 때문에 문화재가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생각이 문화재인 것이고, 그 생각을 기념하기 위해서 결과물인 남대문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우리가 고건축을 하드웨어로만 보면 그냥 보존에 치중하게 되는 반면, 소프트웨어로 보면 좀 더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다.”

 역사와 문화재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그동안 너무 1차원적이고 하드웨어적으로만 바라보고 평가해 왔었던 것 같다. 당시의 문화와 환경 속에서 선조들이 어떤 생각을 했고, 그것을 어떤 기술과 도구로 만들었는지까지 좀 더 깊이 있게 문화재들을 바라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높은 곳에 올라 서울시내의 풍경을 바라보면 성냥갑같이, 도미도처럼 하얀 아파트가 빼곡히 줄을 서 있는 보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러지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먼저 몰려온다. 하지만 교수님은 나보다 좀 더 높고 멀리서 그 모습을 보는 크고 부드러운 시선을 가지신 것 같다.

“아무리 흉측한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때때로 시간은 사춘기의 가슴 아픈 실연의 기억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준다. 건축물 역시 그렇다.”

 먼 미래의 내가 지금의 아파트를 추억하며 미소 짓게 될지, 후손들이 지금의 아파트를 보며 21세기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이라 평하게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런 다른 시선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도시를 유기체로 정의하며 도시의 진화 단계를 생명의 진화 단계에 비추어 설명하는 부분은 매우 신선하면서도 흥미로웠다. 단세포 생물과 같은 모습이 고대도시이고, 피의 순환계 혈관은 도시의 상수도 시설과 같다고 말한다. 다른 기관과 세포 간 정보교환을 하는 신경계는 도시의 교통망이라 할 수 있고,
척추신경계에 해당하는 것은 전화, 통신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각신경계에 해당하는 인터넷 통신망까지 어찌 이리도 잘 들어맞아 보이는지 신기했다. 하지만 유기체에 비해 너무도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고 있기 때문에 현대 도시의 진화 단계가 고등하지 않다는 반전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고등한 도시로의 진화를 위해서는 유기체 연구를 통해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책의 후반부로 가면 건축 공간에 대한 교수님의 확고한 관점을 피력하는 부분이 나온다.

“건축 공간이라는 것도 어느 하나의 확정된 물리적 조건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대신 정보의 해석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 인식의 산물로 보는 것이 이 시대에 건축 공간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일 것이다.”

 건축 공간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데, 같은 공간을 가지고도 어떻게 그 공간을 활용하고 체감하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공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건축가의 역량과 감각이 중요하다고 말씀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도시와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며 과학, 생물학, 심리학, 경제학 등 많은 분야와 접목해서 설명한다. 건축은 결코 건축에 국한되어 바라보면 안 되고, 그러한 건축과 사회와 문화와 경제가 얽히고설켜 도시를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어가고 있고, 그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건축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멋진 것이 건축이라고 말한다. 동양, 서양, 환경, 공간, 종교, 사회, 문화 등 건축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들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심지어 장마가 건축에 미치는 영향까지!  

“건축에서 중력은 인간이 건축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극복해야 할 힘든 과제이자 적이다... 중력을 어떻게 아름답게 극복하느냐를 통해서 다른 예술이 주지 못하는 감동을 전달해 준다... 제약은 언제나 더 큰 감동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도시와 건축에 대한 교수님의 인문학적 시선은 자연을 대하는 방식으로 끝이 난다.

“경사 대지와 아파트라는 건축 형식으로 야기된 옹벽은 사람들 간의 단절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땅의 모양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사람들 간의 관계도 바꾸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자연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이다.”

 어떤 분야에서나 그렇듯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을 때 그 결과는 부메랑처럼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돌이킬 수 없는 슬픈 열매를 맺게 된다. 자연에 대해, 인간에 대해 따뜻하고 건강한 관점을 지향하는 건축의 권위자가 있다는 게 당연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비록 나는 땅 한평, 집 한 채 가진 게 없는 사람이지만 부디 이 지구 위에 좀 더 희망적인 도시와 건축물들을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기를 꿈꾸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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