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선택, 연애는 필수
아빠가 부르는 아모르파티를 들으며 나는 조금 울었다
내가 자주 아주 좋은 아빠로 묘사하는 우리 아빠도 사실 언제나 나를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하던 건 아니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어쩔 수 없는 경상도 남자인 아빠는 한때 29살 즈음이 여자로서 가장 예쁘고 사랑받을 나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30살이 넘어가자 결혼에 대해 조바심을 냈다. 물론 많이 티 내지는 않았지만 그런 종류의 눈치는 아주 조금만 보여도 가슴속 깊이 박히는 것이라서 나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 30대 중반 어느 날, 아빠가 <아모르파티>의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를 때 나는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아빠가 박수까지 치며 신나게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을 부르자 옆에 있던 동생도 따라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나는 결국 조금 울었다. 가사가 그게 맞아? 진짜 그렇게 생각해? 하고 몇 번이나 물었다. 아빠는 농담을 자주 하는 긍정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그렇듯 속마음을 잘 내보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빠가 그 노래를 일부러 부르기까지 한 건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는 의미였거나 혹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자는 자기 암시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우리 가족이 사이좋은 가장 큰 이유는 서로에게 사랑받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는 많은 대화와 고민 끝에 사랑이나 결혼은 강요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며 그것을 강요하면 할수록 나와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누군가와 함께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결혼을 원하기는 하지만 그걸 강요하는 세월 내내 내가 고통받는다면 그 강요가 아무 의미 없다는 것도 알게 되셨을 것이다. 결국 내게 계속 사랑받는 아빠로 지내고 싶었던 아빠는 결혼 이야기는 절대 먼저 꺼내지 않기로 결심한 모양이고 지금까지 잘 실천하고 계신다.
엄마는 의외로 내가 경제적 여유만 갖춰진다면 혼자 살아도 잘 놀고 잘 지낼 것 같다는 확신이 조금 섰는지 이제 나더러 결혼 안 해도 좋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하신다.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동생에게 너무 고맙기도 하다. 동생이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몇 년 전 어느 날, 엄마가 빨래를 개다가 한숨을 푹 쉬면서 ’나도 잔치하고 싶다…’고 중얼거리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엄마 친구 자식들 중에도 미혼인 사람들이 꽤 많아서 엄마는 친구들 앞에서도 눈치가 보여 손녀딸 본 자랑도 마음대로 못한다고 한다. 세상이 진짜 변한 것이다.
나? 나는 페미니스트지만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매우 매우 로맨시스트라서 사랑에 빠지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면서 영원의 사랑을 맹세하자고 달려드는 타입이다. 그러니까 네, 우리 가족 중에 나를 제일 결혼시키고 싶은 건 사실 나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