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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애 일기

by 김소윤


결혼을 결심했다는 말은 아무래도 틀린 말 같다. 그보다는 결혼하고 나서 이 사람과의 결혼을 잘한 일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결혼이 하고 싶었다. J와 사귀기 시작하고 100일이 채 되지 않아서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그땐 결혼이 뭔지 잘 몰랐을 때니까, 그보다는 이별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모두들 이혼이라는 건 아주 어렵다고 하니까, 그렇게 누군가를, 사귀기로 한 J를 어떻게든 끝까지 옆에 묶어두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줄곧 원했던 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늙어 죽을 때까지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며 재미있게 노는 것이었다. 위태로운 연애와 동시에 시작했던 이별에 대한 불안을 마치 결혼이 해결할 거라고 믿었다. 디즈니 혹은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처럼 영원한 'the one and only'를 찾고 믿고 싶었다. 혼주가 부모님이라는 한국의 결혼 제도에 상당한 반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대체할 만한 낭만적인 다른 제도를 지금까지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만 해도 까르륵 웃음이 터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친구들은 많았다. 술이 더해지면 더 했다. 책을 읽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도 있었다. 다만 거기에 성적인 매력이 플러스되기가 쉽지가 않았다. 반대로 나름대로 남자 같다고 느끼면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인구의 반이 남자라는데, 나와 맞는 남자 단 한 명이 없나 싶었다.


그러던 중 와인 모임에서 J를 만났다. 서울에서 학교를 나오고 회사를 다니다가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온 지 어언 4-5년이 되었지만 부산에는 여적 친구가 별로 없었다. 자주 가던 와인바 사장님이 권해서 들어간 와인 모임에서 덜컥 운영진이 되었고 같은 와인바에서 주최한 파티에서 J를 처음 만난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외적으로 취향이었던 모양이다. J는 내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노라 했고 나는 두 번째 만남 즈음 옆자리에 앉은 J의 오뚝한 옆모습과 기다란 손가락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연락을 주고받던 와중에 J에게 던진 질문이 그것이었다. "이준석 좋아해요?" 당시 나에게는 1찍이냐 2찍이냐를 가려낼 수 있는 좋은 정보에다 커뮤니티를 얼마나 하는지, 정치는 어떤 성향인지 고루 알 수 있는 아주 기발한 질문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게 누겨"...


막 썸 타는 가벼운 사이임을 감안하더라도 깃털처럼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그 답변에 놀란 나는 첫 데이트 때 무례함을 무릅쓰고 정말로 J가 얼마나 정치와 그를 둘러싼 인생에 큰 관심이 없는지를 바락바락 캐내었다. 그리고 주말이면 오후 5시까지 잔다는 대답을 들으면서 한숨을 쉬고 내가 얼마나 당신과 다른 사람인지 따박따박 심어주었다.


저는 페미니스트이고요... 이게 뭐냐면 우리나라에서 변형됐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지만 기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러니까 지금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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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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