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글쓰고 강의하는 최지은
Sep 08. 2024
난 그들을 바라볼 때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때론 존경을 때론 애잔함을 때때론 속상함, 원망을.
엄마의 관절 하나는 속상하게 굽어있다. 세 아이 밥 해먹이고 4층 계단 아파트 무거운 짐 오르며 생긴 훈장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서글프다.
여전히 오이지 물을 짜고 여전히 박을 짠다.
그리고 손가락을 구부려 펴지지 않는 손가락 하나는 다른 손으로 편다.
엄마의 펴지지 않는 한 손가락 하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한다. 모두 고생하고, 쉴 틈 없던 여인의 삶을 드러내고 있던 것 같다.
며칠 전 아빠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고관절이 아프다고 전해 들었다. 아빠는 긴 시간 기업에서 일하다 퇴직 후 다른 일을 하고 계신다. 여전히 양복을 입는다.
아니,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거의 양복 입은 모습뿐이었다. 예전에는 토요일까지 일하고, 학교에 갔으니 월화수목금토요일, 나는 아빠가 양복 입은 모습을 본 셈이다. 지금도 양복만 입고 출근하실까. 다른 편한 옷도 입을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떠오르자 죄송한 마음이 든다. 엄마랑은 커피라도 한 잔 마실 시간이 있는데 아빠는 회사에 있으니 그럴 여유가 상대적으로 적다.
지팡이가 있어야 걸음을 걸을 정도로 아프다는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고관절이 얼마나 위험한지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었다. 염증과 괴사, 일어나지 못하고 치료받다 갑자기 상태가 심해진 분들 등등..
당 수치 때문에 무리해서 걸었던 게 원인일까,
버거운 마음으로 일터로 향하는 걸음이 원일일까,
아빠의 아침과 퇴근을 생각하면 나는 존경심과 애잔함이 동시에 떠오른다.
감사하게도 엄마 아빠는 부부가 함께이니 싫어도 함께, 아파도 함께다. 그 사실에 때론 마음이 편안하다.
아직도 서로 싸울 때를 보면 ' 아직도 왜. 도대체 왜'라는 마음이 솟구쳐 원망스럽다가도 엄마가 해온 반찬을 보면 미안하고 고맙고 애잔하다.
엄마가 해준 반찬을 들고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아빠의 모습은 다정하고 또 서글프다. 쩔뚝거리며 걷는 아빠, 지팡이를 짚은 아빠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슬프고 속상하다. 분명 반찬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소파에 앉아 손가락이 쑤셨을 엄마도 속상하다.
고마움과 미안함과 애잔함과 서글픔과
속상함과 존경스러움이 뒤섞인 이름, 부모.
그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