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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이 Oct 22. 2022

환상의 나라에서 엄마가 사라졌다

파리에서 둘째 날


가족끼리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엄마는 꼭 한 번씩 이미 지나친 무언가를 가져오라고 시킨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갔다 와, 여기 있을게.”


그렇게 다녀오면 엄마는 그 자리에 없다.

한참을 찾아다니다 보면 다른 코너에 가있는 엄마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엄마의 특기다.

이제 나와 동생은 마트에서 사라진 엄마를 찾는데 도가 텄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엄마를 찾는데 도가 튼 장소가 오직 한국의 마트뿐이라는 것이다.





파리의 일정은 동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파리 여행에 대해서 동생은 진심이었고, 그만큼 동생이 가고 싶어 하는 웬만한 곳은 다 가는 것을 목표로 계획을 세웠다.

동생은 파리에서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디즈니랜드였다.


디즈니랜드를 일정에 넣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 이유는 엄마였다.

동생이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은 이유의 70%는 밤 10시부터 약 20분간 진행하는 불꽃놀이다.


즉, 엄마가 그 시간까지 디즈니랜드에서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지도 어플을 사용할 줄 모르는 엄마가 혼자 디즈니랜드에서 숙소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엄마는 버틸 수 있겠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미루었고, 그날이 다가왔다.

더 이상 답을 미룰 수 없을 즈음, 엄마는 한번 버텨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디즈니랜드에 가게 되었다.



디즈니랜드에 가기 전에 거쳐갈 곳이 바로 전날 새로 추가되었다.


바로 파리의 대형 아울렛인 ‘라발레빌리지’다.


라발레빌리지는 디즈니랜드의 바로 전 정류장에 위치해, 많은 사람들이 두 곳을 묶어서 가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울렛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한 번은 가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라발레빌리지도 일정에 추가되었다.






오늘은 일정을 다 마치면 밤 12시는 되어야 숙소에 돌아올 것이다.

그런 만큼 아점을 먹고 천천히 숙소에서 나왔다.

파리의 시내에서 라발레빌리지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리는데, 가는 방법은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과 똑같다.

디즈니의 상징인 미키마우스 표시만 잘 따라가다 보면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기차를 탈 수 있다.



내린 역에서 라발레빌리지에 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대형 쇼핑몰을 지나야 한다.

쇼핑몰 뚫고 지나가는데, 프랑스 국민 빵집 ‘Paul’을 발견했다.


“빵..먹을래?”


엄마와 동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행히 긍정적인 답을 받았고, 나는 크루아상을 포함한 몇 개의 빵을 사 가지고 왔다.

빵이라면 초코빵이나 소시지빵만 좋아하던 동생도, 크루아상을 먹고 눈을 번쩍 떴다.

엄마도 프랑스 빵은 뭔가 다르다며 평소보다 한 입 더 먹기까지 했다.

바삭함뿐만 아니라 쫄깃한 식감에,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중량, 버터향까지! 역시 프랑스에 오면 크루아상을 먹어봐야 한다.



드디어 라발레빌리지에 입성했다.


브랜드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들의 브랜드사랑 대단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나라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은 브랜드를 사랑한다고 답하고 싶다.

라발레빌리지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었고, 고가의 브랜드일수록 줄은  길었다.


역시 사람은 다 똑같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은 라발레빌리지의 고객 쿠폰으로 마카롱 먹고, 몇몇 매장을 구경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가방을 발견했다.

평소 물건을 하나 살 때, 많은 고민을 긴 시간 동안 하는 나에게, 엄마는 파격적인 제안 했다.


바로 내가 가방을 구매하면 여행경비 전부를 엄마가 후원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얘기를 꺼내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여행경비를 추후에 n분의 1로 각자 부담하기로 하고, 일단은 내가 우선 결제하고 있었다.

내가 번듯한 직장이라도 있었다면 여행경비 전부를, 아니 비행기 값이라도 부담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약직으로 근무하다가 이제 취업준비생이  나에게는 그런 여유는 없었고, 그런 나 스스로가 조금은 껄끄러웠다.


그런데 엄마가 여행 경비를 전부 내주겠다니! 엄마에게 물었다.


왜?”


왜냐는 질문에 엄마는 처음부터 여행경비는 보태줄 생각이었다고 했다.


‘진작 말씀해주시지, 그럼 극진히 모셨을 거 아니에요?’

속으로 생각하는 나에게, 엄마는 이런 곳에서 하나쯤 살법도 한데 오랜 시간 고민하는 내 모습이 싫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고, 결국 가방을 사기로 했다.


엄마는 스카프 구매했다.

언젠가 해외에 출장을 갔던 아빠가 반쪽짜리 스카프를 사다 줬었는데, 드디어  스카프를 가지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라발레빌리지를 떠나 디즈니랜드에 도착했다.

본격적으로  보관소에 짐을 맡기, 디즈니랜드 입성이다.




파리 시내뿐만 아니라, 디즈니랜드에도 사람이 많았다.


엄마는 엄청난 인파에 놀라 야외임에도 마스크를 고쳐 썼다.

동생은 그러거나 말거나 괴성을 지르며 파리 디즈니랜드의 랜드마크, ‘잠자는  속의 공주 으로 달려갔다.


퍼레이드를 보고, 성도 충분히 구경했다면, 이제 놀이기구를 타러 가야 한다.




 세계 여러 곳에 디즈니랜드가 다.

그리고  디즈니랜드들마다 특색 있는 놀이기구들이 있다.

파리 디즈니랜드에는 ‘니모를 찾아서’를 모티프로 한 ‘크러쉬코스터’, 그리고 배경이 파리인 애니메이션, ‘라따뚜이 모티프로  ‘라따뚜이 어드’가 유명하다.

 말은 즉,   개는  타봐야 한다는 뜻이다.



먼저 크러쉬코스터로 향했다.

대기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고, 잘 모르는 엄마와 동생은 설득해 줄을 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선택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줄이 길지 , 구석구석 숨겨진 줄이 어찌나 길던지!

1시간 30 아니라 체감상  시간은 줄을   같다.

그냥 줄이 짧은 놀이기구를   그랬나 하는 후회도 몰려왔지만, 여기까지  이상 돌아갈  없었다.


기다림 끝에  크러쉬코스터는 대부분의 롤러코스터들이 그렇듯,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재밌었다!

한번 더! 를 외치고 싶은 나와 달리, 엄마와 동생은 벽을 짚으며 걸어 나왔다.

전날 와인을 마신 엄마는 속이 울렁거린다 했고, 동생은 무서 토할  같다고 했다.


오랜 시간 기다린  치고는 반응이 별로였다.




두 번째 필수 놀이기구, 라따뚜이 어드벤처 차례다.

라따뚜이 어드벤처는 라따뚜이의 주인공인 ‘라미’의 친구 쥐가 되어 함께 레스토랑을 모험하는 3D 놀이기구다.

다행히 이 놀이기구는 대기를 거의 하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었다. 그리고 앞서  크러쉬코스터에 비하면 갓난아기도   있는 놀이기구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엄마와 동생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아까 롤러코스터를 타고 곧바로 이렇게 속이 울렁거리는 놀이기구를 탔냐며  소리 들었다.


그래,   욕심이다.





그렇게 사진도 찍고, 놀이기구도 몇 개 더 타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버즈라이트 앞에서의 엄마, 어떤 캐릭터인지 아냐는 내 물음에 엄마는 모른다고 했다.





저녁 메뉴는 바로 햄버거다.

햄버거를 선택한 이유는 테라스 자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테라스에 앉자, 직원이 난로를 주었.

감자튀김까지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사람들이 테라스 자리로 어왔다.

엄마는 기겁을 하며 먹는 것을 멈추고 마스크를 썼다.




디즈니랜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으니, 바로 기념품샵이었다.

디즈니랜드의 곳곳에 기념품샵이 있다.

먼저 들어간 기념품샵은  근처에 위치해 있었. 그래서인가? 기념품샵 안에 사람이 아주 많았다.

엄마는 코로나가 무섭다며 밖에 있으면 안 되냐고 물었다.

구경하고 싶지 않은 것이냐 묻자, 그건 아니라고 한다.

그럼 마스크를  면 괜찮을 것이라며 엄마의 불안을 달래고 기념품샵 으로 들어갔다.




기념품샵 안은 천장도 낭만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사진을 한번 찍고, 엄마에게 천장이 예쁘지 않냐고 물어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자리엔 엄마가 없었다.


엄마가 사라졌다.


코로나가 무섭다더니 정말 안으로  들어온 것인가 싶어 밖으로 나가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바깥에 없었다.

그럼 기념품샵을 안에 있나?

곳곳을 살펴봤지만 엄마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기념품샵 안을  바퀴 정도 돌았을까?

결국 인형을 구경하고  동생을 불러 세웠다.


엄마가 없어졌어!”


동생도 합류해 엄마를 부르며 찾아다녔지만,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 간 거지? 파리의 외곽이라서 그런지 핸드폰 데이터도 잘 터지지 않아, 연락도 가지 않았다.

일단 동생과 찢어지기로 했다.

나는 바깥에서, 동생은 기념품샵 안에서 엄마를 찾기로 했다.

기념품샵 주변을 세 바퀴나 돌고, 역 근처에도 갔다 왔지만, 여전히 엄마를 찾을 수 없었다.


당혹스러웠고, 안 좋은 생각들이 점점 떠올랐다.

그리고 안 좋은 생각들은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선택들을 원망하게 만들었다.

엄마한테 숙소 위치라도 제대로 알려줬어야 했는데! 핸드폰으로 지도 어플을 보는 법을 가르쳤어야 했는데! 멀더라도 엄마를 숙소에 데려다주고 다시 왔어야 했는데! 그냥 디즈니랜드에 오지 말걸!



혼자 끊을 수 없는 걱정과 후회의 굴레에 빠져있을 , 드디어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 찾았어.’


엄마는 기념품샵 입구에서 동생 손을 잡고 서있었.

그리고 동생과 잡고 있는 손의 반대쪽 손에는 열쇠고리  개가 들려있었다.

엄마는 혼자 기념품들도 구경하고, 사고 싶은 도 샀다고 했다.

분명 우리가 기념품샵에서 엄마를 아다닐 때는 엄마가 없었는데 말이다.

 풀렸다.

한편 동생은 이럴  알았으면 우리도 그냥 기념품을 구경할  그랬다며 투덜거렸다.


엄마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어릴  요요를 가지고 놀다가 등을 깨부 나에게 ‘그래,  다쳤으면  거지라고  엄마처럼, 나도 ‘그래,  잃어버렸으면  거지라고 했다.



불꽃놀이를 하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성’으로 향하다, 문득 엄마에게 물었다.


만약 우리를  찾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엄마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경찰서에 가면 되지.”


태연한 엄마를 보며 서울할머니를 떠올랐다.

예전에 서울할머니가 호주에 살고 있는 삼촌네에 방문하신 적이 있다.

아침에 할머니는 혼자 산책을 하시다가, 사라지셨다.

할머니가 없어져서 삼촌네 집은 난리가 났고, 곧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서에 가보니 길을 잃고, 스스로 경찰서에 찾아가신 할머니가 꼿꼿하게 앉아계셨다고 한다.

이럴 때 태연한 것은 두 모녀의 공통점인 걸까?


나는 모든 일이 그렇게 교과서대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 앞으로는 혼자 사라지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알겠다고 했다.




한편 불꽃놀이가 시작하기까지는 2시간가량이 남았다.

힘드냐는  물음에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는 엄마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없다.

디즈니랜드에 겠다고 결심한 이상, 엄마가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나는 동생이 기절하는 줄 알았다.


동생의 말에 따르면, 본인의 인생에 최고의 장면이었다고 한다.


 역시 좋았다.

아니, 솔직히 그냥 그랬던  같다.


과거, 처음으로 디즈니랜드 불꽃놀이를 보았을 때는 나도 동생처럼 좋아서 눈물을 흘렸.

하지만 이번에는  같이 앉아서 보면 좋을 텐데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에는 불꽃놀이가 끝날까 전전긍긍하면서 봤었지만, 이제는 슬슬 다리도 아픈데 언제 끝나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경험할 기회가 줄어들어 슬프다고 한다.

무엇을 먹어도, 무엇을 해도 처음  때보다  충격과 기쁨이 덜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이해를 못 했었다.

맛있는 것은 항상 맛있고, 아름다운 것은 항상 아름다운 것인데 왜 기쁨이 덜하다는 거지?

하지만 이제 처음의 기쁨과 두 번째의 기쁨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겠다.

그 깨달음과 함께, 문득 여행 내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그랬을까?

살아가면서 많은  미디어에서든, 실제에서든 보고 겪었기 때문에  감흥이 없었을까?

불꽃놀이도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 는 엄마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엄청난 인파가 지하철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도 지하철 좌석을 선점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

그렇게 지하철 역에 도착했는데, 또  교통카드에 오류가 생겨 개찰구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첫날, 바르셀로나 때처럼 당황하지 않는다.

이젠 요령이 생겨 개찰구를 그냥 뚫고 나왔다. 덕분에 우리 모두 자리에 앉아서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 끝이다.

방심하고 있는데, 엄마가 귓속말로 물었다.


“내일 한다는 무슨 투어 내 건 취소하면 안 되니?”


출발 8시간도  남은 투어를 취소해주는 투어사가 어디 있어요.

엄마에게 취소는  되고 그냥  가는 방법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투어가 얼마냐고 물어본 엄마에게  사람당 이십만 원이라고 알려주자, 엄마는 가야겠다고 했다.






어른이 되면 처음 겪는 걱정들이 늘어난다.


내가 환상의 나라 디즈니랜드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알고 전전긍긍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른은 책임질 것도, 걱정할 것도 많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환상의 나라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은 늘어나지만 기쁨은 줄어드나 보다.


하지만 이모들에게 디즈니랜드의 불꽃놀이는 대단하긴 하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엄마를 보면 기쁨의 크기가 조금 줄어드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우습게도 불꽃놀이를 보던 당시에는 피곤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리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 지고,  순간을  즐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른은 처음이라는 것에서 느끼는 강렬한 기쁨은 줄어들지만, 잔잔하고 소소한 기쁨과 아쉬움을 발판 삼아 살아가나 보다.



그런 소소한 발판들을 엄마와 같이 많이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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