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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이 Oct 22. 2022

파리와 헤어질 결심

파리에서 다섯째 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일상을 벗어나게 해주는 여행의 결말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도시에 도착했을 , 설렘 느끼며  도시와 사랑에 지곤 한다.

사랑에 빠진만큼 떠나는 날의 섭섭함도 커진다. 그러니까 여행은 설렘과 섭섭함이 공존하는 것이다.


처음인 도시도 아닌 데다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도시 파리를 곧 떠나게 된다.

설렘보다 섭섭함이 더 커진 2021년의 마지막 , 나는 파리와의 이별을 앞두고 헤어질 결심을 했다.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어제 에펠탑 앞에서 동생과 그렇게 워놓고는,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숙소로 이동할 생각을 하니 쉬운 마음이 들었다.

동생도 그렇다고 한다.


반면 엄마는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침구에서 벗어난다!



그동안 숙소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만 언급했었지만,  숙소의 단점은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뿐 아니었다.


 숙소의 주인은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4인까지 지낼  다고 했다.

하지만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숙소는 2에게 최적화되어있다.

그걸 모르고 우리는  숙소에 3인을 예약했고,  결과 우리에게 주어진 침구는 2인이   있는 더블침대 하나와 중간 바닥이  꺼진 여행용 빈백이었다.



최악의 침구



심지어 크기도 작아서, 몸이 맞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다른 침구가 있나 문의해보았지만, 똑같은 이 하나 더 있을 뿐이었다.


내가  문제의 침구에서 자겠다고 했으나, 엄마는 본인이 자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불효가 따로 다.


엄마는  자리에서만 보이는 에펠탑이 좋다고 했다가, 바닥에서 자는 것이 서럽다고 했다.

자리를 바꿔서 자자고 해도, 내가 씻고 나오면 엄마는 이미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엄마는 가만히 누워서 에펠탑을 보곤 했다.


엄마는  애증의 침구와 헤어지는 것이다.



엄마는 새벽에는 에펠탑이 파란색이라고 했다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서, 새로운 숙소의 근처에 도착했다.

에스켈레이터도 없는 파리의 지하철을 저주하며 겨우겨우 숙소 측에서 알려준 입구로 올라왔는데, 뒤돌아보니 건너편 입구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었다.

 걸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며 분노했다.



 근처에는 개선문보다 작은 크기의 기념 건축물이 있었다.

내가 숙소의 위치를 다시 찾는 동안, 동생은 사진을 찍기 위해 홀린 듯이 건축물 쪽으로 향했다.


숙소 위치를 확인하고 동생을 부르려는데, 동생이 어떤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자세히 말하면 여자가 동생의 핸드폰을 빼앗으려 하며 프랑스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당장 달려가 여자의 손을 뿌리쳤다.

인종차별적인 행동인가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고, 동시에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유교 문화에서 자란 나는 어머니 앞에서 욕을 하지 않는다.

꾹 참고 왜 이러는 것이냐 묻자, 여자는 중얼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끝내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사람이 내가 파리와 헤어질 결심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도시와 헤어질 준비  하나는,  도시에서   있는 것은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맛있게 먹었던 과자, 가공치즈 등을 사갈 계획이었다.

운이 좋게도 새로운 숙소의 바로 아래에는 마트가 있었다.

1 1 휴무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마트에는 사람들로 붐볐고, 우리도 인파 속에 뛰어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마트에는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과자는커녕 PB상품으로 보이는 제품들 이었.

대략 비슷해 보이는 것들을 구매했지만, 우리가 먹었던 것보다는 맛이 떨어졌다.


헤어질 준비도 쉽지 않다.




낭만적인 몽마르뜨 언덕, 웅장한 팡테온, 화려한 물랑루즈  아직 파리에서  가본 곳들이 많다.

파리를 돌아볼  있는 마지막 , 우리는 ‘라파예트 백화점 가기로 했다.


라파예트 백화점에 가는 이유는  가지다.

예약을   ‘오페라 가르니에 가깝다는 , 그리고 동생이 거금을 쓰기 위해서다.


라파예트 백화점은 곡선의 미를 강조하는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건축물이다.

그리고  시기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아주 화려하게 꾸며져 있기 때문에 라파예트 백화점에 가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



라파예트 백화점



여행을 하면서 동생이 종종 착용하던 벨트가 하나 있다.

바로 검은색 벨트에 어느 날부터  안을 굴러다니던 구찌 벨트의 버클을  것이었다.

나는 남성 정장용으로 보이는 벨트 버클에 얇은 여성 벨트가 조합된  벨트를 짭찌(+구찌)벨트라며 동생을 놀리곤 했다.

동생은 내게 놀림받은 것이 이 되었다며, 진짜 좋은 벨트를 겠다고 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친절함으로 무장된 라파예트 백화점에서 동생은 정말 벨트를 구매했다.

엄마는 소모품에 큰돈을 들인다며 동생을 나무랐고, 동생은 언니 때문에 사게  것이라고 나를 나무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약한 시간이 다 되어가니 ‘오페라 가르니에 해야 한.



오페라 가르니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오페라  발레 극장이다.

디자인 콩쿠르에서 당선된 무명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 들어 이름 지어진 오페라 가르니에는,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된 호화로운 건물이다.

현재도 오페라나 발레 공연 진행 있다.

사실 원래의 계획은 올해의 마지막 밤을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발레 공연을 보며 내려고 했다.

그러나  저렴한 티켓의 취소표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간을 보다가 티켓이 매진되어버렸다.

결국 우리는 공연이 진행되지 않을  오페라 가르니에에 입장해   있는 입장권 구매해야 했다.

기회는 왔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또 느낀다.



파리의 유서 깊은 건축물 오페라 가르니에는 나도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곳이었다.

미지의 곳인 오페라 가르니에에 들어가 보니, 발레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랑포이어에서의 엄마


오페라 가르니에에는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거울의  모티프로 만들어진 그랑포이어가 있다.

사교 공간  휴게 공간인 그랑 포이어는 정말 아름다웠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은 거울에 자연빛이 비친다면, 그랑 포이어는 거울에 황금색의 조명이 비쳐 더욱 고급스러운 느낌도 났다.


엄마는 베르사유 궁전에도 이런 공간이 있냐며 궁금해했다.

언젠가 엄마와 다시 파리에 오게 되면, 그때는 베르사유 궁전을  가야겠다.



그랑 포이어를 지나면 공연장 안을 들어가 볼 수 있다



공연장



오페라 가르니에는 추리작가 ‘가스통 르루’가 쓴 소설 ‘오페라의 유령 배경이기도 하다.

1896, 공연장에서 샹들리에가 추락한 사고가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오페라의 유령이 쓰였다고 한다.


공연장의 천장화는 ‘마르크 샤갈’이 그린 ‘꿈의 꽃다발었다.

샤갈을 좋아했던 엄마에게 천장화를 가리키며 샤갈이 그린 그림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엄마는 샤갈의 그림을 좋아해   없는 사람처럼 ‘어머~’라는 말만 남기고 공연장을 나가버렸다.

엄마는 맨날 나가버리기만 한다.

엄마가 샤갈의 그림을 좋아했던 것도 다 지나간 일인가 보다.






다음 일정은 파리의 둘째 날에 갔던 아울렛, ‘라발레 빌리지였다.

갔던 곳을   가냐고 묻는다면, 이모들과 아빠, 남동생의 선물을 사기 위해서다.


바쁘게 여행하다 보니, 여행을 한다고 용돈까지 쥐어주었던 큰이모의 선물을 사는 것을 깜빡했다.

 사실을 일깨워준 것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그래 놓고 엄마는 계속 무리해서 선물을  필요는 없다며 자꾸만 약한 소리를 했다.


엄마, 확실히 말해. 선물  사도 되겠어?”


 물음에 엄마는 바람이 빠지고 있는 풍선처럼 그래도 사면 좋지..’라고 답했다.

큰이모의 선물만 살 수 없으니, 작은 이모와 아빠, 남동생의 선물도 사야 한다.



다시 라발레 빌리지의 시작이다.

우선, 고객센터로 달려가 다운로드받은 쿠폰으로 마카롱부터 먹었다.

이모들의 선물은 제법 빨리 구매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아빠와 남동생의 선물이었다.

여행을 가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이들을 위해 무엇을 사야 하는 것이냐!



여러 매장을 둘러본 끝에 벨트를 사기로 했다.

여기서 다시 난관이 발생했는데, 바로 사이즈를 모른다는 것이다.

아빠의 선물로는 쭉쭉 늘어나는 골프용 벨트를 구매했다.

하지만 도저히 남동생의 허리 사이즈를   없었다.

허리 사이즈란 굳이  필요가 없는 정보지만, 이럴  모르니  난감하다.


언젠가 남동생에게 바지를 선물했던 것을 떠올리며, 남동생의 허리사이즈는 나의 허리사이즈보다 크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엄마는 남동생의 허리가 나와 비슷할 것이라며,  허리에 얼추 맞는 벨트를 골랐다.

허참, 어이가 없다.

실제로 선물한 벨트는 남동생이 착용하기에는 조금 버거운 사이즈였다.

엄마들은 자식들이 작은 줄만 안다.



선물을 다 샀으니 이제 볼일은 끝났다!

어서 숙소로 돌아가자!




보통 파리에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게 되면, 개선문에서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있다.

그러나  불꽃놀이는 코로나 때문에 진작에 취소되었다.


물론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는 거의 4시간가량을 인파 속에서 서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엄마를 데리고  생각은 었다.

그래도 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동생은 특히  아쉬워했다.

아직  가본  도시들이 많기 때문에, 갔던 도시는 다시 안 간다’는 철칙을 가진 동생은, 언젠가 파리에는  와야겠다 했다.


불꽃놀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2021년의 마지막 날을, 그리고 여행 마지막 날을 이렇게 보내기는 아쉬웠다.

그래서 조명이 들어온 루브르 박물관의 야경이라도 보러 갈까 제안했다.


하지만 꼭 이런 날에는 자신의 멍청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발광하는 이들이 종종 다.

게다가 우리 숙소는 치한이  좋지 않은 기차역 근처에 위치해있어 망설여졌다.

친구들 여럿과 함께라면 용기 있게 나가겠지만,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가기에는 고민이 되었다.

이런 고민엄마는 마지막 날에 싸돌아다녀 문제를 만들지 말고, 안전하게 잠이나 자라고 했다.


넵, 알겠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허심탄회하게 대화도 나누고, 이 감정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마지막 밤은 열심히 무언가를 구입하기만 하고, 침대에 누워 허무하게 끝나간다.



내일이면 유럽 대륙을 떠나 한국으로 향한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리스본, 포르투, , 파리우리의 여행을 곱씹어본다.


질리는 마음에 다신 안 와야지 싶다가도, 아쉬운 마음에 다시 온다면 무엇을 해야지라며 계획을 세우게 된다.


누군가 한국에 가니 좋냐고 물어본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후련함과 해방감이 든다고는 확실하게   있다.


파리와, 우리의 유럽여행과 헤어질 결심 완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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