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에서 첫째 날
중동의 나라 ‘아랍에미리트’의 수도인 ‘아부다비’는 단순히 경유지로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도시다.
사막투어를 할 수도 있으며,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모스크에 가볼 수도 있다.
아부다비는 멋진 도시이고, 여력이 되었다면 우리도 아부다비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구금된 것처럼 공항에 갇혀있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환승구간으로 나오니 엄마와 동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전광판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도 없었다.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였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우리가 타고 온 ‘에티하드 항공’의 창구 앞의 긴 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국인들을 발견했다.
잠시 고민을 했다.
엄마와 동생을 찾는 것이 먼저인가, 한국인 무리에 가서 이 상황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먼저인가?
상황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 한국인들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나를 맞아주었고, 상황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취소되었단다.
오 세상에...
에티하드 항공의 직원들은 그냥 비행기가 취소되었다고만 설명했지만, 추후에 알아본 상황의 전말은 이렇다.
승무원도 코로나를 피해 갈 수 없다.
에티하드 항공사는 승무원들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인력에 공백이 생길 경우, 탑승객이 적은 비행기를 취소시켜버린다.
그리고 해당 비행기에 배정되어있던 승무원들로 공백을 채운다.
그 취소된 비행기가 바로 한국행 비행기였던 것이다.
한국인들과 모여있으니 무섭지는 않았다.
대신, 코로나라는 역병으로 인해 발생한 상황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항공사가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짜증이 나고 심난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와중에 엄마와 동생은 어디에 간 것인지….
다른 한국분께 양해를 구하고 엄마와 동생을 찾기 위해 떠났다.
다행히 근처에서 엄마와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와 동생은 한국행 비행기가 취소된 줄도 모르고, 기존의 비행기 티켓에 나와있던 게이트에 갔다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말없이 사라지지 않기로 하지 않았냐고 한 소리를 하자, 엄마와 동생은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는데 어떻게 기다리냐며 도리어 나를 타박했다.
속 편히 나를 타박하는 엄마와 동생에게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취소되었다고 알려주고, 한국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왔다.
취소된 비행기가 한국 편만은 아닌 것인지, 그 사이 창구 앞의 줄은 두배로 늘어나 있었다.
데스크에는 두 명의 직원이 천천히 대체 비행 편 연결 처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국경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몇몇의 사람들이 분노의 샤우팅을 내지르자, 한 직원이 샤우팅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언성을 높이며 싸우더니, 밥을 먹고 온다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제 남은 한 명의 직원이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이러한 아비규환 속에서도, 한국인들은 신속한 처리를 위해 여권을 모아 직원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여권을 넘기려고 하는데, 엄마가 여권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여권을 달라는 내 말에, 엄마는 여권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의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저 사람들 왜 내 여권을 가져가려는 거야?"
아, 제발..!
이때 현지 시간으로 새벽 한 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이전 비행기에서 한 숨도 안 잔 나는 누적된 피로로 한계에 몰려 있었다.
내 입에서 잔뜩 날이 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럼 엄마 혼자 알아서 처리할래? 할 수 있어?"
나는 엄마에게 여권을 빼앗듯이 건네받아 앞사람에게 우리의 여권을 전달했다.
엄마에게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동생과 저쪽 의자에 앉아있으라고 했지만, 엄마는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괜찮을 것이라는 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그저 너무 피곤했고, 매고 있는 가방이 무거웠다.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내일 새벽에 출발하는 새로운 비행기 티켓과 머무를 호텔 바우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먼저 티켓과 바우처를 받고 떠났던 사람들이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다시 돌아왔다.
막상 나가려고 하니,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공항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 한 세월을 기다려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받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비행기가 취소되어 아부다비에서 하루를 더 머물게 되는 바람에, PCR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직원이 알려준 대로 PCR 검사소로 향했다.
그런데 PCR 검사소의 직원은 이곳은 입국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며 PCR 테스트를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다시 언쟁을 하고, PCR 검사소 직원은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여러 실랑이 끝에 PCR테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아부다비의 입국심사까지 했으니, 드디어 지옥의 아부다비 공항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부다비에서 한 번에 되는 일은 없다.
공항 내의 에티하드 항공의 직원은 공항과 호텔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제공한다고 했으나, 공항 바깥의 에티하드 항공의 직원은 잘 모르는 일이라며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70년대 통금시간을 넘겨 구금된 사람들처럼, 직원이 공항 내에 가느다란 줄로 급작스럽게 구분해둔 구역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은 궁금증이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기다리는 동안 에티하드 항공을 넘어 아랍에미리트, 중동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치솟았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무료 취소가 안 되는 에티하드 항공의 항공권을 구매한 것을 실수라고 표현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실수 정도가 아니었다.
대단히 큰 잘못이었던 것이다.
엄마와 동생은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다신 에티하드 항공을 타지 않겠다며 이를 부득부득 갈... 힘도 없었다.
그저 이 순간이 꿈이기를 빌었다.
결국 아침 6시가 다 돼가도록 셔틀버스는 오지 않았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이 지옥에서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비행기 티켓을 교환받는 순서에 따라, PCR검사소에서 한국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이때쯤에는 남아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중년의 어르신들과 함께 가게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분들이 가지고 계신 달러로 아랍에미리트 돈을 환전해 택시를 태워주셨다.
호텔에 따라 택시팀을 나누었다.
우리 셋이 한 택시에 탈까 했는데, 어른들이 중동에서 여자들끼리 택시를 타는 것은 위험하다고 극구 말려 우리도 각자 찢어지게 되었다.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는 멋진 도시지만, 나에게는 지옥으로 남게 되었다.
엄마에게 아부다비는 어떻게 남았을까?
엄마에게 아부다비는 여전히 동성애자는 최대 사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으며, 명예살인을 범죄화한 것이 불과 3년도 채 안 되는 아랍에미리트의 수도다.
엄마는 말이 안 통하는 외국에 떨어져 있어서가 아니라, 아랍에미리트의 한 도시에 떨어져 있어서 무서웠다고 한다.
어쩌면 ‘중동에서 여자들끼리 택시를 타는 것은 위험하다.’라는 말은 과장일지도 모른다.
간혹 커뮤니티에서 여자들의 아부다비나 두바이를 여행한 글을 읽기도 했으며, 여기도 다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가볍게 넘겼지만, 엄마에게는 ‘여자끼리는 택시도 못 타는 중동’이라는 말이 깊게 박혔다.
그리고 엄마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