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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이 Oct 22. 2022

웃어라, 사진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파리에서 넷째 날


많은 사람들이 혼자 여행을 할 때 가장 불편했던 점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꼽는다.


나는 혼자 여행을 할 때 삼각대를 이용했다.

사진을 찍는 매 순간마다 소매치기를 당하는 것은 아닌가 불안감이 수반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니까!


여행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은 다양하다.

찍는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스피드하게 찍는 사람도 있고, 예쁜 표정에 예쁜 포즈로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찍히는 것을 선호하는데, 사진의 취향이 어찌 되었든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진을 찍을 때는 웃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사진이 잘 나온다.







전날 몽생미셸 투어를 다녀온 피로 때문에 늦잠을 잤을까 싶지만,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야 한다.

한국 입국을 앞두고 PCR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다들 세수도 못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PCR 검사소로 향했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벌써 줄이 꽤나 길었다.


우리도 마스크를 잘 쓰고 줄에 섰다.

우리 앞에는 마스크가 아닌 스카프로 얼굴을 둘둘 말고 있는 중년 여성이 서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충분히 거리를 두고 서있는 우리에게 더 멀리 떨어지라 손짓했다.


엄마는 마스크도 제대로 안 쓴 사람이 성낸다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맞는 말이다.


곧 PCR 검사소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가기 시작했고, 드디어 접수 기계 앞에 섰다.

그런데 도저히 어디에 무엇을 기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옆 기계를 쓰는 사람들이 여러 번 바뀔 동안 나는 기계와 씨름을 하다가, 어떤 친절한 블로거가 쓴 설명글을 보고 겨우겨우 접수를 했다.


이제 수납창구에서 우리의 대기번호를 부른다.

수납창구는 두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쪽은 영어도 사용하는 직원이었고, 다른 한쪽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직원 앞에 서게 되었다.

당연스럽게도 직원은 프랑스어로 설명을 시작했고, 나는 조심스럽게 영어로 설명해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수납창구 직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노, 온리 프렌치.”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이 소리를 왜 안 듣나 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눈치다.

대충 눈치로 여권과 카드를 건네고 수납을 완료하고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여행 커뮤니티에서 파리의 PCR 검사는 로맨틱하다느니, 부드럽다느니의 의견이 다양했지만 그냥 똑같이 알싸하게 아팠다.

다만 무사히 검사를 한 후에는 직원이 내게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굿걸이라며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나, 스물여섯인디..


이제 PCR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할 일을 끝냈다는 생각에 후련함이 몰려왔고, 동시에 증상이 없음에도 조금은 긴장되었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다시 한숨 자다 나와야겠다.






오늘은 드디어 온전히 파리에 집중할 수 있는 날이다.


가장 먼저 방문할 곳은 ‘생트 샤펠 성당’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성물을 보관하는 보물창고였고, 이후 왕실의 예배당으로 사용되다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생트 샤펠 성당에 갈 때 주의할 점은 법원과 입구를 같이 쓴다는 것이다.

예전에 생트 샤펠에 방문했다가, 별안간 혼자 법원 안을 헤맸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생트 샤펠 안으로 들어갔다.


생트 샤펠 성당은 1층과 2층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유명한 스테인드글라스는 2층에서 볼 수 있다.

1층에서는 겨우?라고 묻는듯한 얼굴의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지만, 2층에 올라가니 엄마와 동생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세 벽을 둘러싸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유명세만큼 아름다웠고, 당연히 사람도 많았다.

동생과 사진을 찍는 사이, 엄마가 또 사라졌다.

한번 둘러보니 엄마는 바깥에서 생트 샤펠 성당의 외부 벽을 보고 있었다.


“여기에는 조각이 있네.”


생트 샤펠 성당에서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닌 외부 조각을 보는 사람은 처음 봤다.

엄마 덕분에 나도 생트 샤펠 성당의 외부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트 샤펠 성당이 있는 구역 ‘시테섬’에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배경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2019년 화재로 인해 뒷부분이 전소되었지만, 정면의 모습은 볼 수 있다.


엄마에게 등 뒤의 노트르담 성당과 사진을 찍어줄 테니 웃어보라고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한 엄마



사진을 찍으려고 멈춘 우리에게 일명 싸인단, 그러니까 소매치기 겸 사기꾼들이 접근했지만 무사히 해쳐 나왔다.


역시 파리는 방심할 수 없는 도시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술관 투어의 시작이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파리에 있는 여러 미술관 중에서 ‘오랑주리 미술관’과 ‘오르세 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물론 파리에서는 모든 소장품을 보려면 한 작품을 30초씩만 보더라도 6개월이 넘게 걸린다는 ‘루브르 박물관’도 유명하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갔다가는 그 넓은 곳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엄마와 동생은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대중적인 작품이 많은 오랑주리와 오르세 미술관을 선택했다.



아마도 엄마는 그림을 좋아한다.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서울 할아버지는 수채화를 그리는 것을 즐기셨다.

할아버지의 예술적 성향을 물려받은 엄마는 결혼 전에는 스카프나 카펫 등에 색을 넣는 텍스타일 일을 했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는 주방의 한쪽 벽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엄마는 화가 ‘마르크 샤갈’을 좋아했고, 미술관 전시를 가보고 싶어 했다.

비록 마드리드에서 갔던 ‘프라도 미술관’은 엄마의 흥미를 끄는데 실패했지만, ‘모네’, ‘르누아르’, ‘고흐’ 등의 유명한 그림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은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랑주리 미술관



‘오랑주리’는 오렌지 온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오랑주리 미술관’은 과거 겨울에 오렌지 나무를 보호하는 온실로 사용되었던 작은 미술관이다.

튈르리 공원의 입구에 위치한 작은 오랑주리 미술관에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이유는 바로 ‘모네’ 전시실이다.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고수한 모네는, 자신의 작품인 ‘수련’ 연작을 자연광이 들어오는 흰 벽에 걸어 전시하길 바랐다.

모네 전시실은 그런 모네의 바람을 적극 반영해서 특별 설계된 공간이다.



모네 전시실에서의 엄마



어느 순간 사라졌던 엄마는 모네 전시실에 자리를 잡고, 수련 연작을 감상하고 있었다.

엄마가 감상을 하도록 그냥 두는 것도 좋겠지만, 괜히 그 모습이 좋기도 하고 엄마의 감상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말을 걸었다.


“어때?”


내 물음에 엄마는 좋다고 했다.

나 때문에 감상이 깨졌지만, 그래도 엄마는 조금 더 앉아 수련을 보았다.


한편 동생은 수련을 배경으로 두고 사진을 찍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몇 장 찍어주었고, 동생은 다시 포토스팟을 찾아 사라졌다.


다시 수련 연작을 감상해보려는데, 어느새 일어난 엄마가 가자고 했다.

벌써?

엄마는 다 봤다고 했다.


누군가는 모네의 수련을 하루 종일 감상하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나 보다.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영국의 팝 아트 화가이자,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비싼 화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호크니’의 작품들도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호크니가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을 프린트해서 걸어둔 것인데, 그래서인지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지나갔다.



호크니의 작품



관람이 끝나고 엄마와 동생이 화장실에 갔다.

그 사이에 메일함을 확인해보니, 벌써 아침에 한 PCR 검사 결과가 도착해있었다.


매번 그렇지만, 결과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때는 항상 떨린다.

파일을 여는 그 짧은 순간 동안에도 확진이 되었을 경우 머무를 숙소까지 고려했다.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내내 마음속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감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마저 여행을 즐기고 한국에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 기쁜 소식을 엄마와 동생에게도 알렸으나, 뭐 당연한 것을 가지고 그렇게 좋아하냐는 핀잔만 들었다.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기다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개조해 만들어진 미술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장도 높고, 건물의 외벽 양 끝에는 옛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차역처럼 거대한 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오르세미술관의 높은 층고
꼭대기의 양 끝에 위치한 대형 시계



미술관의 1층을 보고 바로 5층으로 올라가자는 내 말에, 엄마는 미술관이 5층까지 있냐며 벌써 기절할 것 같다고 했다.

역시 루브르 박물관은 안 가길 잘했다. 오르세 미술관은 천장이 높은 통 건물이기 때문에 1층과 5층을 제외하고는 2, 3, 4층은 계단이나 중간 테라스뿐이니 말이다.



오늘로써 오르세 미술관은 세 번째 방문이다.

하지만 올 때마다 좋다.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작품의 해설을 듣는 것도, 작품의 위치가 바뀐 것도 모두 재미있다.


하지만 엄마와 동생은 쉬고 있을 테니 나더러 혼자 둘러보고 오라고 했다.

동생은 그럴만하다.

하지만 엄마는 그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나?


엄마에게 고흐, 르누아르의 유명한 그림들을 보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냥 그렇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착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지,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보는 것을 분리하지 못한 것이다.

그냥 그렇다는 엄마를 인정하기로 했다.

엄마는 홀로 터덜터덜 떠나는 나에게 천천히 따라가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오르세 미술관의 5층에는 교과서에서 보던 작품들이 넘쳐난다.



모네의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꽃밭’ /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모네의 작품은 빛이 밝은 곳에 걸려있다.

반면 고흐의 그림은 어둡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에 걸려있다.


두 작품 간의 밝기의 대비는 모네의 그림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꽃밭’의 배경은 낮이고, 고흐의 그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은 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대비가 반대하는 결혼으로 생활고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아이와의 삶에서 행복을 느낀 모네와, 실패한 사랑으로 고독과 슬픔을 느낀 고흐의 생애를 표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드가의 ‘14세의 어린 무용수’, ‘파란 옷을 입은 무용수들’



‘드가’는 무용수를 모델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그는 남성 무용수는 그린 적이 없다. 오직 여성 무용수만을 그렸다.

때문에 무용수인 동시에 매춘의 대상이 되는 그녀들의 몸에 대한 환상과 환멸의 현실을 고발한다는 의견, 모델인 무용수들에게 몇 시간씩 뒤틀린 발레 자세를 시키며 학대했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청동 조각상인 ‘14세의 어린 무용수’의 모델을 한 소녀는 소속되어있던 발레단에서도 모델을 하느라 결석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드가는 작품이 완성된 이후에 발레단에서 쫓겨난 소녀를 해고해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소녀는 어머니와 언니를 따라 매춘의 문턱에 떠밀려진 것이다.


드가에 대한 평가는 나뉘지만, 어찌 되었든 발레 자세를 취하는 여성에게 집착했다는 점에서 괴짜 혹은 변태 같다는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피에르 보나르의 ‘고양이’. 예나 지금이나 고양이는 귀여운 모델이다.





뒤이어 온 엄마는 오르세 미술관이 1층과 5층뿐인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볼걸 그랬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빨리 숙소로 돌아가자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 숙소로 가자.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는 한국의 퇴근길의 지하철처럼 사람들로   있었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나온 시간이 파리의 퇴근시간과 맞물렸나 보다.

파리는 관광지를 제외하곤 항상 여유로운 도시인  알았는데,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엄마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코로나에 걸리면 어떡하니!

엄마는 입도 열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타는 것은 서울에서나 파리에서나 피해야 한다.






오늘은 에펠탑이 보이는  숙소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더 머무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내일은 다른 숙소 떠나야 한다.

에펠탑도 보이고, 우리끼리만 사용하는  숙소에 익숙해졌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날인만큼, 동생과 둘이서 가까이에 있는 에펠탑을 보러 가기로 했다.


동생과 함께 계단을 내려가다가 지갑을 두고   깨달았다.

동생에게 기다리라고  , 지갑을 가지고 내려왔다.


그런데 동생이 사라졌다.

디즈니랜드에서의 엄마에 이어, 이번에는 동생의 차례인 것이다.


숙소 근처를 아무리 찾아도 동생은 없었다.

에펠탑에 갔겠거니 하는 마음에 에펠탑 쪽으로 향하며 주위를 둘러봐도 동생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핸드폰으로도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

먼저 연락을 해볼 수도 있었지만, 자존심에 그럴 수 없었다.



엄마가 사라졌을 때는 걱정과 불안만 가득했다면, 동생이 사라지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말도 없이 사라지는 것에 이골이 나기도 했고, 분명 사진을 찍느라 사라졌을 것이다.


분노 게이지가 오른 상태로 파워워킹을 며 에펠탑을 지나는데, 인종차별주의자 남성 둘이 장난 삼아 내게 소리를 질렀다.

잔뜩 화가 났고, 나는 욕설을 내뱉었다.

 인종차별주의자는 그런 나를 보고 낄낄 거리며 사라졌다.

더 화가 났다.


그렇게 에펠탑의 전경이 보이는 ‘사이요궁 도착했다.

그리고 그제야 동생에게 어디냐며 연락이 왔다.

어디야? 지금 누가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구글맵으로 지금 있는 장소를 찍어 보냈다.

여기로 .


앉아서 화를 식히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화가 조금 가라앉으니 주변에서 찌린내 나기 시작했다.

파리는 오늘 내게  이럴까?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그때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확인해보니 구글맵 사진이었다.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고, 동생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내가 먼저 나한테 오라고 했잖아.”


동생은 대충 근처인  같다며 빨리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다.

따지고 싶은 것이 한가득이었지만,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 보이스톡이 끊겼다.


발을 쾅쾅 구르며 동생이 보내준 구글맵을 위치로 향했다.

드디어 동생을 찾았다.

동생은 포토스팟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앞사람들이 사진을 다 찍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습 화가 나서 미치는  알았다.


지금 사람 똥개 훈련시키냐?”


뾰족한  말에 동생은 태연하게  그러냐 물었다.

?!?!

동생은 내가 지갑을 가지러 올라간 사이, 정각마다 하는 에펠탑의 조명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에펠탑 쪽으로 가서 나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사람을 기다려야지, 사진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물었다.

동생은 같이 버스를 타기로 해놓고 혼자 사라진 것은 언니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때, 다시 정각이 되어 에펠탑의 조명쇼가 시작되었다.

동생은 핸드폰을 들어 영상을 찍기 시작했고, 일단 영상을 찍는 중이니 나도 입을  닫았다.

하지만 속에서 열불이 났다.

조명쇼가 끝나고, 동생에게 다시 물었다.


“이 와중에 그게 그렇게 찍고 싶냐?”


 말에 동생 역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언니 여러  와봤겠지만, 본인은 파리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새롭고 좋은데  배려를  해주냐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어디까지 배려를 해달라는 거야! 지금까지 그냥 너를 두고 가버리고 싶은 것도 얼마나 많이 참았는데!

동생은 버리고 갈 테면 가보라며 악을 썼다.


그 사이, 우리가 사진을 찍을 차례가 되었다.

나는 싸움을 멈추고 동생에게 퉁명스럽게 빨리 가서 서보라고 했다.

동생의 눈썹은 잔뜩 올라가 있었고,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아, 웃으라고!”


사진을 찍고 나서,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생겼던 앙금들을 털어내며 소리를 지르면서 싸웠다.

그러다 사진이 괜찮게 나올만한 곳을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다시 싸웠다.


사진만 보면 아무도 우리가 싸웠는지 모를 것이다.



에펠탑 아래를 지날즈음, 동생과 앞으로 말없이 사라지지 않고, 엄마를 우선으로 하기로, 그리고 무언가를 찾을 때는 함께 찾기로 약속했다.

동생은 알겠다면서도, 내가 너무 예민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나는 한 번만 더 예민하다는 말을 꺼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에펠탑 아래에는 잡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여러 에펠탑 관련 기념품들을 팔고 었다.

그것을 보고 동생은 이제 생각났다며, 에펠탑 열쇠고리를 사야 한다고 했다.


나는 숙소에서 그대로 지갑을 두고 나왔으면 어쩔 뻔했냐며, 동생에게 1유로를 주었다.

그리고 도와주지 않을 것이니, 알아서 흥정해 구매하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흥정을   개수를 많이 부르고 조금씩 깎는데, 동생은 된다고 하면 계속 개수를 높였다.

그렇게 동생은 1유로에 에펠탑 열쇠고리 7개를 샀다.


역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다.



그 놈의 반짝이는 에펠탑





여행을 하면서 싸우는 것은 손해라고 하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동생과 싸울 것을 예상하긴 했다.

엄마 앞에서는 싸울 수 없으니, 그게 예상보다 미루어 이렇게 관광지의  복판에서 싸우긴 했지만 말이다.

그것도 사진을 찍는 중에 일어날 줄이야.


싸우고 사진 찍고, 다시 싸우고 사진 찍으면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현타가 오기도 다.

하지만 어쩌면 분노 외에 현타라는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싸움도 빨리 결정지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진들도 게 되었다.

이제는 에펠탑 앞에서 싸운 것도 사진과 함께 하나의 추억처럼 남게 되었다.


우리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웃는 얼굴과 함께 사진으로 남긴다.

웃으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힘들었던 순간들이 아닌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행복은 웃음이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여행 중엔 웃어라. 러면 사진이 나와 함께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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