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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이 Oct 22. 2022

가자, 이 시국에 엄마랑 유럽여행

결심


서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선에 살고 계신서울할머니는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다.

서울할머니는 거제도에서 꽤나 사는  딸이셨다. 할머니가 젊은 시절 일을 하고 받은 급여를 본가에 보내지 않고 본인이 온전히  쓰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의 여동생, 그러니까 엄마의 고모 자기 오빠랑 한번 만나보라고 해서 할아버지를 만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항상 당당하고, 무엇이든 혼자 거뜬히 해내는데다가 주관이 뚜렷한 그런 분이셨다.


미디어에서 주를 이루는 그런 할머니들과는 달랐지만, 나는 그런 우리 할머니가 좋았다.


동네분들하고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 옆에서 앉아있던 따뜻한 평상, 떠돌이 개에게 쫓겨 달아나던 할머니   골목도 좋았다.

봄에는 마당의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따먹고, 여름에는 영글지 않은 포도를 가지고 놀고, 가을에는 호두를 깨고, 겨울에는 연탄난로 위에 올려진 주전자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을 구경하던 도 말이다.


조금 크고 나서는, 친구들과 실컷 놀고 늦게 들어가게 되 골목 앞에서 서성이며  기다리시던 할머니, 다음날 아침이면 차려져있는 다 먹기 힘든 고봉밥과 감자볶음, 괜찮다고 해도 손에  쥐어주시던 용돈


 단편적인 기억들이 순간순간 떠오른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던 할머니는  이름 사투리 발음으로 부르곤 하셨는데 그게 할머니만의 푸근한 애정표현이어서 좋았다.

이제는 그렇게 불러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조금 슬프다.





계약직으로 일을 하게 되면서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좋았고, 재밌던 기억들도 있지만, 계약직이라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긴 시간도, 짧은 시간도 아니지만 일하면서 동시에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나를 계속해서 끊어진 기찻길로 내몰았다.



그즘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암으로 투병을 하고 계셨지만 가끔 고통스러워하시며 진통제를 드실  빼고는, 나랑 같이 밥도 드시고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프로그램인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이 보곤 했는데, 급격히  좋아지시더니  생각보다, 아니 예상치 못하게 일찍 돌아가셨다. 나이가 들면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 있긴하지만, 그래도 슬펐다.



누구나 살면서 상실을 겪는다.

나 역시 할머니의 장례식이 내 인생 첫 장례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애착이 있는 누군가의 장례를 직접적 치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경조사 휴가를 써보고, 와주신 손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기도 하고, 음식량을 체크하고, 누가 참석했는지, 화환은 누가 보냈는지  장례를 치르는데는 할 것도 많다.

 같이 킥킥 웃다가도,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셨다는 성가를 부르다 울기도 하고, 조문을 오신 성당 교인분들을 보며  번쯤은 할머니랑 일요일에 같이 성당에 가볼걸 후회도 한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날 보게 된 면접도 시원하게 말아먹고 뭐 그랬다.

PT를 하다가 자료가 뒤섞인 것을 보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면접이 끝나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웃기게도 처량한 주인공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계속 취업에 실패하고 탈락만 하고 있는 나는 주인공과 거리가 멀긴 하지만 말이다.

할머니에 대한 공백이 느껴져서인지 회사 계약기간은 정말 얼마  남았는데 그나마 잡은 면접 기회마저 날려먹어서인지 속이 울렁거렸다.



정장자켓만 입고 있기에는 추운 11월이었다.


나는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엄마는 갱년기를 호되게 겪고 있었는데,  상황에서 회사에서 그 짧은 시기안에 갑질에, 권고 아닌 권고사직까지 당하고, 동시에 당신의 어머니까지 잃었으니 정말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정도 병간호를 했었는데, 그래서인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상처를 받은  같다.


많이 힘들어 보였다.


우리에겐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유럽여행을 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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