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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수 Sep 16. 2020

이름 모를 벌레

2020-09-15 일상의 편린



왼쪽부터 차례대로 나나, 미미, 차차


차차에게 물을 주고 탁자에 올려두었는데 떨어진 흙 조각들 속에서 벌레가 한마리 있었나 보더라고.

 

벌레의 종류는 몰라. 그냥 창문을 열면 덩쿨 위로 기어다니는 풍뎅이같이 생긴 검고 작은, 흔한 벌레 였어. 


뒤집혀서 꼼짝을 하지 않기에 죽었나 싶어 치우려 살짝 건드렸는데 다리가 움찔 거리는 거야. 

뒤집을 기운은 없는 힘없는 발악. 


무언가 간절해 보여서 마침 먹고 남아 있던 사과 조각을 움직이는 다리로 가져다 두었더니 사과조각에 탁하고 붙더군. 그러고는 긴 주둥이가, 음 뭐라고 할까 사각사각? 움직였어. 반복해서 좁고 작은 입구를 열었다가 닫았다가, 사각 사각 영원히도 움직일 듯 보였어. 


벌레는 빈사상태에 가까워도 영양소가 들어가면 살아나려나? 마치 냉동됐던 개구리가 녹으면 다시 숨을 쉬듯. 작은 기대감이 들었어 우리 집 창문 밑에 새끼를 쳤던 맷비둘기의 알을 바라보았을 때 처럼. 



사각사각 들릴리 없는 주둥이의 움직임만을 가진 벌레와 사과조각을 창문가에 두고 잊어버렸어. 그러고 두시간 정도 잠에 들었지. 오줌이 마려워서 낮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가려고하는데, 문득 생각이 나서 문을 여니 여전히 사과한조각이 덩그러니, 그리고 그 옆으로 그 작은 벌레가 다시금 뒤집혀서 덩그러니. 


이번에는 그 작고 좁은 주둥아리가 아니라 다리 하나만, 그것도 다리 마디의 끝부분만을 움찔 움찔 떨고있더라. 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살아나지도 못하고 작디 작은 움직임만을 반복하고 있는 벌레가 있었어. 마지막 발악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생명이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그 순간을 한참을 목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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