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것이 전원을 켜면 귀에 거슬릴 정도의 굉음을 내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이었다.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었기에 그 시기가 대략 언제였는지 짐작도 가지 않을뿐더러, 언제부터 조그맣던 소리가 그렇게 커져서 굉음을 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소리가 조금 나면 나는가 보다, 조금 소리가 커지면 커졌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단지 인터넷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였다.
굉음의 정체를 겨우 알아차린 것은 최근인데, 전원을 켠 후 잠시 책을 읽을 때였다. 내 머리는 이제 들리는 소리를 굉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그것을 고쳐야겠다는 것을 계산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수리를 미루던 어느 날, 그것은 더 이상 전원이 켜지지 않았고, 나에게 인터넷 정보세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백지같이 하얗던 내 머릿속에 하나의 빨간 줄이 그어진 듯했다. 그 굉음은 죽어가는 그것의 최후의 비명소리였던 것이다. 나는 그야말로 안달이 났다. 퇴근 후 30분에서 1시간 정도 하는 매혹적인 인터넷은 군생활의 아늑한 쉼터와도 같았는데, 그 공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나는 늦은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14를 통해서 가까운 컴퓨터 A/S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방문 A/S가 안 된다는 수리 기사의 말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초조해진 마음은 급기야 그것을 안고서 택시를 타게 만들었다. A/S 센터에 도착하자 그것의 속을 해체하고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수리 기사는 이제까지 작동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잠시 손을 보더니, 전사한 것으로만 알았던 그것은 마법에서 풀려나듯 다시 굉음을 내며 살아 숨 쉬었다. 아직은 그럭저럭 작동은 하지만 얼마 못 갈 거란 수리 기사의 말을 듣고서야 그동안 잘 관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들었다. 조금 이상이 있을 때 미리 가서 고쳤을 것을…. 아무튼 다시 소생한 그것을 다시 안고서 택시에 탔을 때 그것은 왠지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날의 사건은 평범한 일상생활이란 벽에 심하게 금이 가는 것과 같았다.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나에게 참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나에게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컴퓨터 그 이상의 무엇으로 다가왔다. 컴퓨터에 이름이라도 지어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니, 컴퓨터는 그 누구보다도 나와 군생활을 오랫동안 같이한 동료였다. 나의 군생활이 만 6년이 넘어가는데, 소대장 2년차에 구입하였기에 나와 거의 5년을 동고동락한 셈이다. 당시 해안 소초장이었던 나는 매일 미니축구만 하던 소대원들이 안쓰러워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큰 맘 먹고 TV에 연결해서 볼 수 있는 컴퓨터와 대형 스피커를 구입하였다. 영화 기능이 잘되도록 어느 부속 하나가 유난히 비쌌던 걸로 기억하는 컴퓨터가 택배 아저씨의 차로부터 내려서 소대원들의 기대 속에 포장지가 벗겨지고 위풍당당 그 자태를 뽐내던 순간은 아직도 기억 속에서 생생하다. 한 생활관에 전 소대원이 옹기종기 모여 커튼을 치고 처음으로 영화 한 편의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그 웅장한 사운드와 우리들 시선을 단번에 흡수하던 영상은 또 어떠하였던가. 그 어느 큰 극장도 부럽지가 않았다. 힘든 야간 매복과 이른 새벽 수색정찰로 인해 지쳐있던 우리들에게 컴퓨터는 크나큰 활력소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컴퓨터로 인해 우리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스타크래프트 게임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그토록 바라던 정보처리기사에 합격할 수 있었다. 연대장님 소초 순찰 시에 이 컴퓨터는 소초의 크나큰 자랑거리가 되었고, 평소 엄하셨던 연대장님의 그 흐뭇해하시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2년 동안의 해안 소초장 시절이 끝나자,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이 나이를 먹고 화려한 연예생활에서 은퇴하듯이 나의 컴퓨터도 생활관보다 작고 조용한 독신숙소로 쉴 곳을 마련하였다. 그 이후로 컴퓨터는 소대원들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응원의 박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컴퓨터를 구입한 최초의 본래 목적이 퇴색되어 가고 있었고, 컴퓨터는 다른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내 방에서 나만의 유일한 소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대가 여러 번 바뀜에 따라 택배를 통해 여기저기 혼자서 험난한 여행을 하면서 이곳저곳 상하지 않은 곳이 없었을 것이다.
새로 고친 컴퓨터는 여전히 굉음을 내었지만, 얼마 못 가서 끝내 숨을 거두고야 말았다.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내가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 부려 먹은 것이 아닌지 죄책감이 들었다. 이렇게 컴퓨터는 영영 내 손을 떠나, 연극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주목받지 못한 조연이 무대 뒤로 사라지듯이 일생을 조용히 마감했다.
컴퓨터는 살아있는 동안 나를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감내하였다. 때론 아픈 곳을 호소할 때도 있었지만 나의 무관심에 의해 무시당한, 이름도 없는 하찮은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만약 내가 컴퓨터의 이름을 불러주었다면 컴퓨터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을 것인데, 그러지 못하였다. 컴퓨터는 나에게 무한한 도움을 주는 스승이었고, 나는 그 도움을 받는 학생에 불과하였다. 진정으로 컴퓨터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부족한 내가 컴퓨터에 의지한 것이리라.
나는 숨진 컴퓨터를 내 마음속에 기리면서, 주위로 시선을 옮겨 혹여나 내가 평소 잊고 지낸 또 다른 소중한 것이 있는지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은 참으로 많았다. 먼저 부모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친구들과 군 선후배들, 중대원들, 젊은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들, 학교 은사님…….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이 나에게 당연시되면서부터 소중함이 퇴색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묵묵히 희생하다 숨진 그 컴퓨터처럼 되기 전에, 잠시 소외된 곳에서 묵은 때가 쌓일 대로 쌓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던 것들을 하나둘 꺼내어 천천히 닦고 닦았다. 그러자 다시금 그 속에 감추어져 있던 오색찬란한 빛깔이 내 눈앞에 눈부시게 펼쳐졌다. 그 빛깔은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자, 내가 수없이 의지한 것이었다. 실로 나는 부모님의 사랑에 의지하고 친구들의 우정에 의지하고, 군 선후배들의 솔선수범에 의지하고, 중대원들의 희생에 의지하고, 젊은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들의 아름다움에 의지하고, 학교 은사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였다. 그토록 나를 도와준 것이 많았음에도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었던 나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었고, 컴퓨터의 희생은 그런 잊혀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올해 설날, 부대에 격려차 직접 방문해 주신 사단장님께서 해주신 덕담이 생각난다. 국문과를 졸업한 내가 들어도 깜짝 놀랄만한 이 덕담은 마치 가슴에 화살이 꽂히는 듯 와닿았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계속 감사할 일이 생긴다.”
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사소한 하나에도 관심을 갖고 그것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향기를 얻어내는 열렬한 탐구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항상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간직한다면, 나의 미래는 늘 행복과 설레는 꿈으로 가득 찰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