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라도 하나 사 그곳에 집 한 채 짓고 살면 어떨까 하고 오래전부터 꿈꿔왔다. 봄이면 뻐꾸기 소리 들리고 가을이면 색색의 단풍이 물들어가는 계곡에서 지낼 수 있었으면 하고. 텃밭 일구며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 한 잔 나누는 삶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하지만 부동산 관련 공부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관련 분야 및 법조문도 방대하고 용어조차 생소했다. 땅을 사 집 짓고 사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위대하게 보인 적이 없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어도 실전 경험이 없어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사례나 경험을 공유해도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다 권리분석을 잘못해 낭패를 본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기에 경ㆍ공매는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처음 공매에 도전한 분야는 부동산이 아닌 승용차 매각 건이었다. 공직생활을 마치고 교육에 관한 여러 가지 추억을 되뇌며 사람을 그리워할 때쯤, oo교육문화원에서 사용하다 용도 폐지된 업무용 차량이 매물로 나왔다. 입찰가를 2,890,000원에 써내고 그에 따른 입찰보증금 72,250원을 입금했지만 내가 써낸 가격은 어림도 없었다. 58명이 투찰 하여 유효 투찰자 49명 중 나는 15번째 순위였다.
승용차 공매를 통해 입찰부터 낙찰까지 전 과정 온비드시스템을 이해하고 관련 정보를 안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입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성향이나 심리도 조금은 알 수 있어서 추후 부동산 공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위안거리였다. 처음 도전한 날이 2021년 7월 19일이고, 그다음 날인 7월 20일 고배를 마신 것을 거울삼아 부동산 쪽에 도전해 보고자 했다.
주변 부동산부터 임장(臨場)에 나서며 경험을 쌓았다. 처음 임장활동한 곳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에 있는 지목이 대(垈)인 토지였다. 사건 물건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는 한여름이어서 잠시 밖에 나가도 금세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는데, 내비게이션은 사건 물건 토지로 나를 데려다주지 못하고 그 주변만 빙빙 돌 뿐이었다. 하도 답답해 승용차를 바쳐 놓고 물어물어 동네 이장을 찾아갔지만, 그도 볼일이 있는지 집을 비운 뒤였다.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집 주소는 도로명 주소를 쓰고, 토지는 옛날 지번 주소를 쓴다는 사실이었다. 휴대폰을 통해 도로명 주소를 치면 지번 주소를 알려주는 검색 창을 여니 다행히 내가 찾는 물건 토지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기대와 달리 산자락 깊이 박힌 맹지인데다 풀이 우거져 접근조차 어려웠다. 말이 대지(垈地)지 땅 구실을 하긴 글러 먹었다.
그 후로도 옥천 군서면 사정리 논과 주택, 진천 생거진천 휴양림 인근 밭 매물을 답사했다. 궁금한 것은 그때그때 부동산 사무실에 들러 물어보고, 거래 실례가격도 알아봤다. 그렇게 현장 경험을 통해 투자 노하우가 생기자 어느 정도 두려움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공매가 경매보다 투자 위험이 덜하고, 경쟁률도 낮은 걸 알기에 밑져야 본전인 셈 치고 부동산 임장 활동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공매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마침 oo시 oo구 oo읍에 있는 국방부 소유 사택 여러 채가 공매에 올라왔다. 지체 없이 사건 물건지로 달려갔다. 면적이 모두 동일하고, 최저 입찰가도 6천만 원 초반이어서 구미가 당겼다. 아이들도 다 커 시집 장가보내 넓은 집이 필요 없을 것 같아 지금 사는 집을 정리하고 그리로 들어가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임장 할 때부터 내 집을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초등학교가 바로 인접해 있고 상가도 꽉 들어차 있었다. 아파트 진입로가 2차선이라 아쉽기는 해도 9개 동 883세대로 단지가 제법 컸다. 주변엔 최근 지어진 LH 주공아파트를 빼면 건축된 지 오래된 아파트가 대부분이지만 교통 여건은 괜찮았다. 도심 변두리이지만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면 자동차 전용도로로 진입이 용이하고, 사통팔달 어디든 통할 수 있는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아파트 매매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 단지 내에 있는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들렀다. 중개사무소 실장에게 명함을 받고 공매로 나온 아파트가 어떤 구조인지 살필 겸 매물로 나온 집을 구경했다. 매물도 몇 되지 않았지만, 온비드 공매를 통해 낙찰받지 않고 초 저층이 아닌 아파트를 구입하고자 하면 6천5백만 원 정도, 선호하는 인기 물건은 7천만 원은 줘야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았다.
임장을 끝냈으니 이제 실전이다. 어떤 물건을 택해야 하나 그것이 문제였다. 주판알을 굴린다. 매물로 나온 아파트가 6천5백만 원 전후 거래되고 있으니 그 이하로 써내야겠지. 사는 데는 중층이나 고층이 도긴개긴이다. 층이 좋은 105동이나 107동 물건은 경쟁이 심해 고가(高價)로 낙찰받을 바에야 차라리 실거래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저층인 108동 아파트는 동쪽과 서쪽의 층고(層高)가 다른 부정형으로 지어져 안정감이 없는 데다 3층까지 수목이 우거져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여러 가지 검토하고 고민한 끝에 109동 물건에 투찰 하기로 마음먹는다. 해당 동은 아파트 단지 맨 뒤에 배치되어 혼잡성이 덜하고, 자동차 주차 시에도 독립 공간 확보가 용이해 보인다. 단지 서편은 농경지가 펼쳐 있고, 뒤편은 야트막한 산이 자리 잡고 있어 바람이 잘 통하고 뷰 마저 좋다. 더군다나 내가 택한 ooo호는 통로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이동이 용이하고 시야의 확장성까지 있어 생활하는데 이점이 많지 않은가.
입찰할 물건을 결정하고 나니 최종적으로 얼마를 써내야 하는가가 문제였다. 투찰 가격은 처음 맘먹은 대로 정했다. 아파트 낙찰률을 보면 대개 시세의 85%에서 95% 정도인데, 이곳은 도심 변두리이긴 해도 학교 선호 지역이고 매물이 나오면 금세 거래되는 경향이 있어 95% 가격대로 써야 낙찰될 것만 같았다. 한 번 결정하고 나니 이것저것 셈법을 따지면 골치 아파 다른 가격으로 투찰은 아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를 때 답이 아리송해 처음 적은 답을 고쳐 써 나중에 후회한 적이 어디 한 두 번인가. 이번 입찰에서도 더 이상 내가 정한 가격에서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드디어 입찰 결과를 기다리는 날이 밝았다. 혹여 전 날 길몽이라도 꾸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여느 날처럼 평온하게 잠에서 깼다. 아내 또한 꿈은커녕 무더위에 지쳐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는 대답뿐이다. 마우스를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경험 삼아 투찰 했더라도 혹시나 하고 기대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지 않은가. 마우스를 어떻게 클릭했는지 모를 정도로 창이 열렸다. 낮 있은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써낸 가격이다. 이럴 수가! 이런 행운이 내게도 찾아들다니. 부동산 공매 첫 도전 만에 얻은 결실이라 그 기쁨 이루 말할 수 없다. 더군다나 나는 차점자보다 101,000원 높여 써내고 우승컵을 손에 들었으니 짜릿하기만 했다.
그동안 부동산 공부에 쏟은 노력과 힘들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공부를 많이 하지도 않고, 많은 것을 알고 도전한 것은 아니어도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순간이다.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치면 보금자리가 생긴다는 기분에 들떠 낙찰 결과를 보자마자 곧장 주차장으로 달려가 승용차 시동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