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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Oct 20. 2023

경매장 가는 날

 

    

 봄이면 뻐꾸기 소리 들릴 것 같고 가을이면 색색의 단풍이 물들어가는 계곡에서 지낼 수 있었으면 했다. 자그마한 땅이라도 그런 곳에서 텃밭 일구며 가끔은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 한 잔 나누는 삶의 여백을 붓질하고 싶어 했다.  

 인터넷 지도에서 스카이뷰(Sky View)를 실행하고 토지 지번을 입력한다. 윗마을과 아랫마을 중간에는 길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마을 뒤편으로는 야트막한 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경지정리 된 논에는 채소 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시설이 여러 개 들어서 있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지만 살기에 괜찮은 동네 같다. 우체국과 행정복지센터와 복지회관이 있는 면 소재지까지 차로 십여 분 거리로 이동이나 접근성도 좋아 나도 몰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이 어디 있으랴. 임장(臨場) 한 데도 여러 곳이고 여러 날이다. 은퇴 후 노년의 삶을 색다르게 하고 싶어 곳곳을 다녔는데 입에 맞는 땅이 없다. 땅값이 적당한가 싶어 공인중개소를 찾아가면 봉을 잡은 듯 그 자리에서 가격을 올리기 일쑤고, 매물로 나온 주소지를 찾아 땅 주인을 직접 만나 협상해도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하여 이런저런 문제로 시간을 끌기보다 경매 시장에 나온 물건이 마음에 들어 아내와 같이 차를 몰고 사건(事件) 토지를 찾아간다. 

 이 땅은 어머니와 아들 단둘이 공유(共有)하고 있는데 자식 지분은 2/1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채무를 변제하지 못했다. 경제 사정이 여의찮은 데다 코로나19까지 밀려들어 사업을 실패한 걸까? 물불 안 가리고 흥청망청 쓰다 그리되었을까? 아마 당사자는 생활비며 자녀 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해 생각이 많아진다. 사정이 어쨌거나 팔십 넘는 노모(老母)는 자식의 그런 사정을 알기나 할까…. 

 사건(事件) 물건마다 사정이 있고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큰돈을 들여 땅을 사서 버섯 재배사를 지었건만 공사대금 부족으로 유치권까지 걸린 밭이 있는가 하면,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다 만 토지도 있다. 내가 태어나서 유년을 보낸 시골 마을 인근에도 경영난에 시달려 매물로 나온 공장이 두 건이나 된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무려 삼십여 명이 넘는 경쟁 속에 감정가보다 훨씬 높은 고가(高價)에 낙찰된 역세권 농지도 있다. 오늘 어떤 이는 건축비조차 충당하지 못해 오만상을 찡그리며 세상을 한탄하고, 또 다른 누구는 행운의 기쁨을 안은 채 어떤 방법으로 토지를 개발해 투자 수익을 창출할까 즐거운 고민 속에 술 한 잔 나누는 날이기도 하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경매시장, 그곳에 들어온 물건은 누군가는 채 간다. 사정이 있어도 그 누구도 사정을 들어주지 않는다.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채무를 변제하거나 다른 사람이 대위변제(代位辨濟) 하지 않는 이상 땅은 주인의 품에 돌아오지 않는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경매시장도 동물의 세계와 습성이 별다르지 않다. 이기적인 유전자는 늘 꿈틀거리게 마련이다. 

 어떤 경매꾼은 잘 아는 후배가 찾아와 자신의 토지가 경매에 넘어간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는 경매 일정이 잡힐 때마다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높은 금액을 써내고 잔금을 완납하지 않는 방법으로 그 후배가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줘 땅을 되찾은 사례가 있기는 하나, 그런 경우는 가물에 콩 나듯 아주 드물고도 드문 일이다.    

 태어날 때부터 부유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는 하나 대개 하루하루 벽돌 한 장 쌓아 올리는 시간 속에 가정을 꾸리고 터전을 마련한다. 그런데도 인생살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라 우여곡절을 겪는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인생살이의 잣대는 돈이었고, 돈을 위해 사는 나날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람이 살고 죽는 건 한순간인데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좀체 쉽지 않다. 

 여생(余生), 그런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텃밭 겸 생활공간을 꾸려보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둘러보고 다녔다. 하지만 마땅한 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도 차를 몰고 길을 나섰지만 땅 모양이 뱀같이 길쭉하거나 쇠갈고리처럼 생긴 매물을 보았을 때처럼 마음이 뒤숭숭하다.

 현장에 와 보니 인터넷 도면이나 항공사진보다 생동감이 더 있다. 아무리 봐도 여러 명이 입찰에 참여할 물건 같아 보인다. 씨앗을 뿌리고 새순이 돋는 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상상을 한다. 농막 안에서 갖은 채소를 식탁에 올려 쌈장 얹어 입안으로 쑥 밀어 넣으며 그 만족감에 희열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토지를 낙찰받기만 하면 그 어떤 비바람이나 눈보라라도 맞을 각오는 되어 있다. 공유물(公有物)을 분할해 나눠 갖거나, 매각하여 대금을 청산하거나, 공유자 중 누군가에게 되팔거나 하는 번거로움은 문제 되지 않을 것 같다. 

 임장(臨場)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다시 한 번 해당 물건을 살핀다. 땅 구입은 집을 짓는 것처럼 공을 들여야 한다. 매각물건명세서와 현장 조사서 정보를 살피며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토지대장과 토지 등기부등본까지 출력하며 토지의 이력을 파고든다. 

 땅 주인이었던 바깥양반은 원래 동네 원주민이 아니었다. 외지에서 들어와 낯선 곳에 농지를 구입하고 집터를 마련하고 자수성가한 분이다. 하늘과 땅만 바라보며 농사짓던 하늘바라기 농부였다.  

 어찌 된 일인가. 놀랍게도 그분을 통해 내 어렸을 적 할아버지의 모습이 반추된다. 다른 매각 물건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데, 왜 하필 이 건만 그럴까? 할아버지는 재산을 불려 가면서도 땅에는 집착을 보이지 않으셨다고 했다. 소 몇 마리 내다 팔면 눈에 보이는 땅을 손에 넣을 수 있어도 내 손으로 농사지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냐며 힘에 부치는 땅은 사들이지 않으셨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지 않고 부칠 수 있는 땅에서 소박하게 인생을 사셨던 할아버지! 

 하룻밤만 자고 나면 경매시장이 열린다. 좀체 잠이 오지 않는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보니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이 가까워져 온다. 그러다 잠이 들었나 보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법원에 간다고 해놓고 여태 일어나지 않았느냐며 퉁명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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