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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Oct 05. 2023

저당 잡힌 남자

수필에 날개를 달다 13

   없어서 서럽고 사는 것도 힘겨운데 남자는 부잣집 수캐처럼 일만 저지릅니다. 맘에 드는 구석이라곤 손에 꼽을 정돕니다. 왜 이런 남자를 만났는지 지지리도 복도 없습니다. 그때엔 귀신에 씌었나 봅니다. 하도 속을 썩어 가슴이 뭉그러질 정도입니다.

  어느 날 남자는 도시 곳곳이 개발되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거라는 소식을 접합니다. 휴일이면 쉴 만도 한데 그날따라 마음이 착잡한지 일찍 집을 나섭니다. 동네를 돌아다니고 복덕방 문을 두드립니다. 도시는 변해 가는데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다며 한탄합니다. 홀로 남겨진 기분이라며 자신을 힐책합니다.

  남자는 궁리 끝에 단돈 30만 원을 손에 쥐고 아파트 분양 모델하우스를 찾아갑니다. 남자의 그런 태도에 소장은 어이없어합니다. 분양 계약금을 모를 리 없는 젊은이가 실성한 것 아니냐며 가련하게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물러설 남자가 아닙니다. 잔여 세대 물량이고 저층이 아니냐며 흥정합니다. 분양소장도 사정은 알지만 그렇게는 팔 수 없다고 남자의 청을 거절합니다. 남자는 한 달만 참아달라며 그때까지 계약금을 마저 채워 넣지 않는다면 맡긴 돈을 포기하겠다며 매달립니다. 분양소장도 여태 그런 적 없다며 남자의 청을 들은 체 만 체합니다. 막상막하는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겁니다. 팽팽한 줄다리기가 한동안 계속되다가 소장은 남자의 고집을 꺾을 수 없는지 본사 사무실에 전화를 겁니다.

  남자는 우여곡절 끝에 그 집을 손에 쥐고도 그냥 있지 않았습니다. 어느 지역에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질 거라는 소식을 접하면 아파트 본보기집을 들락거립니다. 부동산 뉴스가 나오기만 하면 만사 제쳐놓고 해설까지 늘어놓습니다. 내 집이 생기고 나서는 서러울 게 없다던 남자가 아파트 분양 전단지를 모으고 본보기집을 제 집처럼 드나듭니다. 베란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계곡 바람보다 시원하다며 허풍 떨 때는 언제고 아파트라면 사족을 못 씁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얼마 안 가 본색을 또 드러냅니다. 사는 공간이 비좁다며 넓은 곳으로 집을 옮겨 가자고 합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벽이 갈라지고 문짝이 너덜너덜한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가 새고 녹물이 올라오고 수돗물이 끊겨도 그 동네 사람들은 불평을 모르나 봅니다. 차를 댈 공간이 부족해 매일 주차 전쟁을 치르면서도 잘도 참아 냅니다. 살림살이 늘어 발 뻗고 자기 어려워도 불편을 감수합니다. 그렇다고 그 동네 사람들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자식 출세를 위해서라면 밤늦게까지 과외 선생을 불러들이고 쓸 만한 땅이 나왔다 하면 단숨에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남자도 돈이 있었으면 아마 그런 동네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남자, 그런 여자들과 별 다르지 않을 부족입니다. 한 아파트에서 9년 넘게 살기도 했지만 결혼한 지 25년 만에 여섯 번이나 이사한 걸 봐도 말입니다. 지금도 틈만 나면 집 옮길 생각뿐입니다.

  누구나 내남없이 넓은 집에서 숨 쉬고 싶어 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을 겁니다. 내세우고 싶고 비교당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넓은 곳으로의 이동을 계속하는 심정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에 대한 아픔과 절망의 상황에서 벗어나 으스대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뱁새가 황새 따라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파트를 옮겨갈 때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많게는 집값의 30%가 넘게 대출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새 집에 가면 뭐 합니까. 넓은 공간에서 살면 뭐 합니까. 외식을 제대로 하나, 번번한 옷을 사 입어 보기를 하나, 무턱대고 집을 옮겨놓고는 대출금 갚느라 허덕입니다. 그런데도 남자는 하고많은 날 주판만 두드립니다.『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책을 읽고도 그럽니다. 물론 이해는 합니다. 적은 봉급으로 물가 오름세를 따라잡지 못하니까요. 봉급쟁이 해봐야 그날이 그날이니까요.

  경제 논리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런 남자의 행동에 가족들은 화가 나 있습니다. 좋으면 혼자서 아파트와 놀지, 왜 관심도 없는 사람들까지 그 놀음에 끌어들이는지 속을 모르겠습니다. 아파트 한 채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는 남자. 여자가 무슨 옷을 입고 싶어 하는지, 자식들이 어떤 바람을 갖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요. 파괴할 수 없는 남자의 멈출 줄 모르는 욕망으로 또 덤터기를 씁니다.

  오지 마을 아이들에게 꿈을 그려 보라고 했더니 대다수가 집을 그렸다고 합니다. 오막살이 집이더라도 제대로 된 집이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리고 달빛이 이마를 간질어도 아이들에게 인기척 없는 산과 들은 가족이 아닙니다.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나 봅니다.

  남자는 정말 아파트를 떠나 살 수 있을까요? 할 일도 많고 챙길 것도 있을 텐데 술에 취해 살 듯 아파트에 취해 사니 말입니다. 어쩜 이 남자는 아파트에 사는 한 아파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 계간문예, 2012년 여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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