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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16. 2023

행복한 우동 가게

   

  낙엽이 져 가는 시인 공원 옆에 '행복한 우동가게'가 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가게의 풍경에 놀랐습니다. 충주에 사는 지인들과 같이 그곳을 찾았는데 도심에 이렇게 정취 나는 곳이 있는가 하고 의아했습니다. 우동 가게에 우동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우동 가게라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이나 쉼터로 착각이 들 정도로 테이블 사이사이엔 온갖 종류의 책들이 꽂혀 있고 메모지도 보였습니다.

  우동을 먹기 위한 테이블에도 낙서로 가득했으며, 벽이며 천장 심지어 밖으로 나 있는 화장실까지 인생을 살면서 느낀 세상 이야기들이 조그마한 틈도 허락하지 않은 채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사람들이 가게를 다녀가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순간의 상념들을 적은 것인데 막걸리 냄새가 진동을 하고 한숨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구나 들러 인생을 노래하고 세상을 조아리면서 써놓은 글로 그것은 인생의 진리, 깨달음입니다. 배꼽을 움켜쥐는 풍자도 있고 세상의 아픔이 묻어나는 흔적도 보았습니다. 난로 가에 둘러앉아 정종과 막걸리를 데우고 우동 가락을 세어 가면서 서로 간의 마음을 녹여 놓았던 것입니다.

 여주인은 공원에 즐비한 느티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느티나무가 항상 반겨주었기에 대낮 손님이 없을 때 공원으로 나가도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같이 별을 바라보며 달빛도 모았습니다. 세월이 야속할 때에는 밀가루를 뒤집어쓴 채로 달려가 행주치마에 눈물을 닦으며 자신의 속 얘기도 털어놓았습니다. 서럽도록 시린 사랑이나 지난날의 살가움이 생각나면 별이 지고 있는 공원에서 늦은 시간까지 느티나무의 허리를 잡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느티나무는 힘들어하는 그녀를 위로하며 다독거립니다. 지난 세월을 후회하지 말고 바람에 흔들려서도 안 된다고. 전에 술주정하며 다녀간 사람 미워하면 뭐 하냐 하며 얼굴에 흐르는 눈물도 닦아주었습니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던 그녀였기에, 꽃 모자 쓰고 나비처럼 날던 그녀였기에 더욱 애처로워 어찌할 줄 몰라했습니다.

  그녀에게도 모진 시련이 있었습니다. IMF의 여파로 남편의 잘 나가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평온했던 집안은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해버렸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조차 나 몰라라 하며 하나 둘 떠나버렸습니다. 어디 하나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있는 것 다 내주고 입에 풀칠할 것도 없이 밖으로 나 앉아야 했습니다. 하늘이 캄캄해지고 희망마저 없는 듯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기에 갖은 궁리를 하여 충주의 한 공원 옆에 자리한 초라한 집을 세내어 우동가게를 열었습니다.

  알고 보면 세상에 얼굴을 내밀 수 없어 밀가루 포대 속에 몸을 숨긴 겁니다. 그러나 가게를 열고나서도 한동안은 후유증으로 시달렸습니다. 갈등도 겪어야 했고 방황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답니다.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날 수도 없거니와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이치를 알고 난 다음부터는 웃음을 잃지 않고 우동가락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지는 낙엽이 가을이 떠나감을 아쉬워할 때마다, 이름 없는 시인들의 발걸음을 붙들기 위해서라도 따끈한 국물에 막걸리 한잔 담아냅니다. 그렇다고 우동만 만들어 내지는 않는답니다. 몇 평 안 되는 초라한 가게에서 밤하늘에 별을 수놓으며 느티나무를 벗 삼아 소설도 같이 담아낼 거랍니다. ‘내 손으로 뽑아낸 우동가락은 얼마나 길까? 그 우동가락을 이어가면 세상 모든 곳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산도 넘고 강도 넘어서 세상 끝까지…….’ 그렇게 날마다 밀가루 반죽을 하면서 사람들이 들려주는 자질한 이야기들을 받아 적어 놓았다가 조미료도 넣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은 길고 긴 면발로 뽑아낼 거랍니다.



                    환상의 섬

     

            각기우동 집에 오면 안 된다.

            아주머니가 피곤하시다.

            피곤하신 아주머니를

            더 피곤하게 해서는 안 된다.

            네가 피곤할 때 나한테

            우동을 말아주지 않을 터.


  꿈속에서도 우동을 끓인다는 그녀가 좋아하는 글입니다. 일에 지쳐 깜박 잠이 드는 바람에 손님을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는데 우동을 먹고 난 손님은 주인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글을 남겨 놓았더랍니다. 피곤해하는 주인 여자를 위해 가게에 오지 말자는 파격. 환상의 섬일지라도 곤히 잠든 여인을 깨우면 미안할까 하여 조심스러워하는 마음. 주인을 배려하는 애정이 묻어납니다.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듯합니다.

          보지 않은 얼굴이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하여

          지갑을 열면서도

          이곳에 또 와도 되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얼얼해지고 속이 채워져도 행복한 우동 가게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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