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했던 초등학교 CA 시간 2부: 바둑기사 편
초등학생이었던 1990년대 후반 즈음에 사교육으로 바둑 붐이 일었다. 머리를 좋게 해 준다, 집중력을 높여준다, 예의범절을 알게 된다느니 바둑의 방식을 떠올려보면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나도 엄마 손에 이끌려 바둑학원에 가게 됐다.
격자무늬의 바둑판 위에 규칙적으로 점이 있었고 그 점은 하수의 수준에 따라 미리 바둑알을 놓고 시작할 수 있는 위치였다. 바둑의 승패는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상대방의 돌을 둘러싸서 따먹는 것으로 그 땅따먹기 영역이 넓어지면 승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룰은 몇 수 앞을 보느냐에 따라 승패의 판가름이 결정되기 때문에 수준에 따라 즐기면 된다.
한 창 뛰어놀기 바쁜 나이에 바둑판 앞에 앉아 골똘히 고민했을 나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보면 귀여웠을 듯하다. 기억에 재빠른 운동신경이 필요한 운동이나, 감성이 중요한 미술과는 달리 승패를 결정할 한 수를 심사숙고하여 맞추는 과정이 수수께끼 같아 남다른 매력을 줬던 것 같다. 분명 이 바둑학원의 기억은 좋았던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CA로 바둑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바둑교실은 기보라고 하여 바둑 두는 방법을 적은 책을 이용했다. 기보는 한 페이지 안에 미니 바둑판이 대여섯 개가 있었고 하나의 미니 바둑판에는 미리 채워진 바둑알 다음에 놓기에 적절한 수를 그리는 방식이었다. CA 시간에는 칠판에 그중 몇 문제를 같이 풀어보았는데 친구들보다 똑똑한 것을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선생님께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온 힘을 다해 풀었다.
성인이 되고 나니 바둑만큼 진득한 취미를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집중을 요했던 출퇴근 독서도 점점 스마트폰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고 퍼포먼스 마케터라는 직업은 나를 더 빠르게, 빠르게 일을 처리하라고 재촉하게 만든다. 그러다 우연히 다이소에서 퍼즐을 사게 됐다. 예전부터 1천 피스 퍼즐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퍼즐을 보는 순간 나의 잊고 있던 로망(?)이 떠올랐다. 시작은 150피스였다. 퍼즐을 시작하는 순간, 마치 나의 천성을 발견한 듯싶었다. 퍼즐을 맞추다 보면 몇 시간은 금세 흘러있었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퍼즐 하는 동안에는 잡생각이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그때는 전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던 터라 쉬는 날에도 온전히 쉬지 못했는데 퍼즐 덕에 직장 스트레스를 잊어버릴 수 있었다. 퍼즐의 장점은 또 있다. 가족끼리 친목을 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서로 각자의 파트를 맡아 머리를 맞대고 맞추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된다.
뜻밖에 발견한 나의 천성은 150에서 300으로, 300에서 500으로 늘어갔고 1천 피스는 아직 공간 제약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다. 웃긴 건 지금은 이직 후 직장 스트레스가 줄어들어 퍼즐을 안 하고 있지만 오히려 우리 엄마의 취미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라도(?) 엄마의 취미가 하나 더 늘어서 좋을 뿐이다.
내가 왜 퍼즐을 좋아하게 됐나 생각해보니 바둑이 떠올랐다. 퍼즐과 바둑의 공통점은 각자의 적절한 위치가 있고 그 자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은 다른 것들과의 조합을 맞춰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 위치를 알아내가는 과정이 차분하고 지적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때로는 지적이지 않아도 된다. 도통 이 자리에 들어갈 수(또는 조각)를 모르겠다가도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으면 방법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리저리 두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 수가 나오기도 한다.
새해도 어김없이 퍼즐로 시작한다. 이번 퍼즐 도안은 집에 복을 가져다준다는 부엉이 도안으로 새해에 맞춰 주문했다. 가족, 복, 재물. 이 모든 것들이 퍼즐로 하나의 소원을 완성하고 싶듯이 말이다.